하청호||대구문학관장

3월이다. 지금 교육 현장은 상급학교에 진학한 새내기들과, 한 학년이 진급한 학생들의 풋풋한 설렘으로 충일(充溢)할 것이다.

특히 초등학교에는 갓 입학한 신입생과 한 학년 진급하는 아이들은 1년 동안 공부할 교실과 친구들, 담임은 누가 될 것인지 초미의 관심을 가지게 된다.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들도 그들 못지않게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뿐만 아니라 새로 전입한 선생님들도 새로운 학교에 대한 기대로 이래저래 3월의 학교는 활기가 넘친다.

지난날 입학식은 아이들의 가슴에 손수건과 이름표를 달았다. 입학생이 나란히 줄지어 선 운동장은 다소 쌀쌀했지만, 햇살은 밝고 따뜻했다. 긴장된 아이들의 붉은 두 뺨과 이제 학부모라는 명칭을 얻는 젊은 새내기 부모들의 얼굴이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것인지 우려하는 마음도 있어 아이들 못지않게 얼굴이 상기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의 초등학교 풍경은 이런 모습이 많이 줄어들었다.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재학생과 신입생이 마주 인사를 하고, 선생님과 학부모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교실로 입장하는 것이 아니라 강당에서 조촐하게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일부 학교는 교내 방송으로 공부할 교실에서 입학식을 거행했다. 이런 현상은 최근 수년간 창궐한 ‘코로나19’의 후유증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입학하는 아이들이 대폭 줄어든 까닭이다.

입학식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지만, 입학하는 아이들의 눈높이로 보면 신입생의 수가 많든 적든 그것은 어른들의 생각이지 아이들은 여전히 학교에 대한 긴장감이 있다. 첫 학교의 인상은 아이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어쩌면 평생을 좌우할 정신적 바탕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학교나 부모, 사회 구성원들은 그들이 학교생활에 정착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학교는 학교다워야 한다. 사회의 제반 부정적인 것은 학교 담을 넘지 않아야 한다. 학교는 온전히 사랑과 배움의 성스러운 장소가 되어야 한다. 혹자(或者)는 요즘 아이들은 지난날의 아이들과 다르다고 한다. 사회의 온갖 비리가 그들에게 오염되어 아이다움이 희석되었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회의 각종 부정적인 면이 그들의 삶터에 공존하니 피해 갈 수 없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을 들여다보면 그러한 행위는 지극히 표피적일 뿐이다. 오늘날 학교의 역할은 그러한 오염된 것을 벗겨내고 순수한 동심을 찾아주는 일이다. 단편적인 지식보다 지혜를 일깨워 올바른 인격을 갖게 하는 일이다. 지식은 외부로부터 오지만 지혜는 내부에서 길러진다. 궁극적으로 지식이 삶의 수단이라면 지혜로움은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교육자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Pestalozzi)’는 ‘높은 지식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자신에게 순수한 인격이 없다면 어두운 그늘이 그를 둘러쌀 것이다. 그러나 천한 오막살이에 있을지라도 교육된 인격은 순수하고 기품 있는 인간의 위대함을 발산한다.’고 했다. 학교가 학교답고, 선생님이 선생님답고, 부모가 부모다우면 그 속에서 아동들은 고매한 인격을 가진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3월에는 각급 학교의 운동장에 학생들의 밝은 웃음이 넘쳐나고, 교실에서는 면학에 열중하는 그들의 형형한 눈빛을 기대해 본다.



하 청 호(대구문학관장)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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