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의 우리술 이야기 <40> ||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전통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우리술은 계절에 맞춰 마시는 절기주(節期酒)가 많다. 4계절이 명확하게 구분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명절이 있고 세시풍속이 따랐다. 당연히 계절마다 수확하는 재료가 달랐고 그때마다 특별한 술을 빚었다. 세시풍속에 맞춘 세시주이자 계절주였다.

여름 초입인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다. 단오 무렵에 마시는 대표적인 절기주가 창포주(菖蒲酒)다. 단오까지는 아직 3개월 이상 남아있지만 지금 창포주 이야기를 꺼내드는 것은 며칠 전 ‘2024 강릉단오제 대한민국 창포주선발대회’ 모집 공고를 메일로 받았기 때문이다. 대체적인 일정을 보면 3월에 강릉에서 보내주는 석창포를 부재료로 사용해서 창포주를 빚어 5월 말쯤 제출하고 6월 초 단오에 맞춰 시상식을 한다. 지금쯤이 창포주를 빚을 시기인 것이다.

느닷없이 강릉단오제 창포주선발대회를 언급하는 것은 대구경북에도 지역의 역사성을 담은 전통주대회를 한 두 개쯤 개최하는 게 좋을 듯해서다. 창포주대회를 계기로 ‘강릉=단오제=창포주’라는 인식이 전국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사실 단오제는 대구 인근 경산시에서도 매년 개최해오고 있다. 경산시 자인면 계정숲 일원에서 매년 개최하고 있는 ‘경산자인단오제’다. 신라시대 때부터 전승되고 있는 축제로 왜적이 침범하자 한(韓) 장군이 누이동생과 꽃관을 쓰고 춤을 추며 적을 유인해 물리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축제다.

하지만 단오제 명성은 강릉이 앞서고 있다. 창포주를 내세우면서다.

창포주는 동의보감에도 제조방법이 나와 있을 정도로 알려진 술이다. ‘석창포 뿌리 즙 5말에 찹쌀 5말을 넣고 삶은 후 고운 누룩 5근과 고루 섞는다. 술 빚는 평상시처럼 숙성시켜 가라앉힌다. 그 윗물을 오래 복용하면 신명(神明)을 통하게 하고 오래 살게 한다.’ 동의보감 외에도 창포주 제조법을 수록한 문헌은 많다. 양주방, 임원십육지, 주찬, 고사신서 등등에도 제조법이 등장한다. 조선 후기 문헌인 주찬에는 제조법과 함께 ‘이 술을 마시면 36가지 병이 저절로 없어진다. 또 풍증도 치료 된다’고 했다.

사실 창포를 빼고는 단오를 이야기할 수 없다. 여인들은 그네를 뛰며 이날을 즐겼고 창포 즙을 짜서 창포물로 머리를 감는 풍습은 요즘도 심심찮게 이벤트성으로 재현하기도 한다. 창포 뿌리를 깎아 만든 비녀를 머리에 꽂기도 했는데 창포의 독특한 향이 역병을 물리치는 액땜으로 작용한다고 믿었다.

창포 뿌리를 넣어 빚은 창포술을 마시는 것은 남자들의 풍류 중 하나였다. 창포의 뿌리의 즙을 내어 고두밥, 누룩과 섞어 발효시키거나 뿌리를 말린 후 청주에 담궈 100일 동안 침출시켜 마셨다.

단오는 설날, 한식,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이었다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의미가 많이 축소되었다. 더군다나 창포주가 여러 고문헌에 수록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술도 아니었다. 아마 강릉단오제 행사로 ‘대한민국 창포주선발대회’를 여는 것도 잊혀져가는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자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강릉단오제가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분명한 것은 창포주선발대회가 강릉단오제라는 축제를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구를 대표하는 술은 없는 것일까. 대구 달성군 유가면에 거주했던 밀양 박씨 종가에서 전승된 1천100년 전통의 대구 ‘하향주(荷香酒)’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 2022년 7월에 경영난으로 양조장이 문을 닫으면서 사라졌다. 이에 따라 대구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자격도 반납하고 결국 명맥마저 끊기고 말았다.

그나마 최근들어 경북 지역 종가에서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가양주를 복원해 상품화하려는 움직임들이 구체화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다.

대구경북지역에도 전국적으로 알려진 축제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사실 축제와 술은 연관이 깊다. 강릉단오제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창포주선발대회를 개최하면서 축제 뿐 아니라 강릉이라는 도시이미지를 알렸듯이 대구경북에도 역사성이 있고, 독창적인 전통주대회를 개발해냈으면 한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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