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JS소아청소년과원장, 계명대학교 명예교수

서비스업계에서는 MOT(Moment of Truth:결정적 순간)라는 경제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고객과 만나는 첫 15초간의 순간이 고정고객으로 남느냐, 잃어버리는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므로 이 순간에 고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 MOT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스칸디나비아 항공사(SAS)의 얀 칼슨(Jan Carlzon) 사장이다. 얀 칼슨 사장은 이 개념을 도입하고 고객서비스를 혁신해 불과 1년 만에 스칸디나비아 항공을 연간 800만 달러의 적자회사에서 7천100만 달러의 흑자회사로 바꿔 놓았다.

의료계에서도 이 개념이 도입돼 진료환경 개선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 주차와 접수, 진료와 수납, 검사와 투약 및 시술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환자와 만나는 모든 접점 포인트에서 짧은 순간의 이미지가 그 환자의 치료 결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병원의 이미지를 좋게 소개하는 재추천 지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에 따라 각 병원 마다 MOT를 활용한 이미지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 모임이 많아지는 달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바쁜 일상 탓에 어린이에게는 접점포인트(MOT)기회가 줄어들면서 말이 늦어지고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거리두기가 일상화되고,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말하는 입 모양을 볼 수 없거나,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없게 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는 듯 하다. 최성애 박사의 ‘인간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두 사람이 있을 때 접점 포인트의 수는 하나이지만, 세 사람일 때 접점 포인트는 3이 아닌 6이 되며, 네 사람일 때는 25, 다섯 사람일 때 90, 여섯 사람일 때 301, 일곱 사람일 때 966으로 한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접점 포인트는 3배씩 늘어난다고 했다.

과거 한 가정의 형제 자매가 평균 5명일 때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더한 대가족은 1만번의 접점 포인트가 생겨 어린이에게 충분한 언어 자극과 정서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는 성장에 별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핵가족으로 많아야 25회 정도의 접점포인트가 있고, 그마저도 TV나 동영상에 의해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거나 언어적인 자극이 떨어지면서 발달이 늦은 아이가 너무나 많이 증가했다.

여기에다 코로나19 여파로 이 같은 발달지연 뿐만 아니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정서문제로 치료를 받는 14세이하 환자가 급격하게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대구(병·의원 소재지 기준)의 14세이하 ‘활동성 및 주의력 장애(ADHD)’ 진료 환자수는 지난해 3천306명으로 직전년도보다 23.7% 증가했다. 이런 어린이들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있다.

1960~70년대의 사진을 보면서 가난한 가운데서도 서로 소통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너무나 가난했기에 비록 잠은 집에서 잤지만, 놀고 먹고 하는 대부분의 생활이 골목에서 이뤄졌고, 그곳에서 인간관계를 배우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놀이터에서는 친구를 만날 수 없고, 학원에 가야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율배반적인 환경이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주거 문화와 편의성을 최대로 강조한 현대 건축물이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으리라 생각한다.

살갗을 접촉하기보다는 기계를 접촉하기 원하고, 직접 보기보다는 스크린을 통해 보기를 원하는 모습에서 삶이 왜 자꾸 왜소해지고, 자폐적으로 변해가는가에 대한 해답은 건축가 승효상 선생의 ‘빈자의 미학’에서 찾을 수 있는 듯 하다. ‘여기에선 가짐 보다는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 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그의 건축물이 하양에 있는 ‘무학로 교회’와 ‘다방 물볕’이고, 군위에 있는 ‘사유원’이다. 이곳에서 많은 교훈을 얻는다.

김준식 JS소아청소년과원장, 계명대학교 명예교수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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