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한복가게가 몰려있는 대구 서문시장 1지구 2층에서 만난 한복점을 운영하는 이순연(66·여)씨의 하소연이다.
서문시장 내 맞춤 한복점이 모두 모인 공간에는 명절을 맞아 호객 소리가 울려야 하지만 적막함만 가득했다.
한복을 둘러보는 고객들은 온데간데없고 상인들만 삼삼오오 모여 소곤대는 소리와 물건을 납품하는 거래처 직원만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다가오는 설을 맞아 ‘명절 특수’를 누려야 할 서문시장 한복매장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
1997년 외환 위기(IMF)를 겪으며 시민들이 허리끈을 졸라매자 한복 매출은 반토막이 났고 이후로도 점차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기성세대에서도 명절·경조사·행사 등을 참여할 때 응당 한복을 입는 분위기가 사라졌고,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한복을 입는 문화를 겪지 못해 맥이 끊겼다.
상인들은 2000~2010년대까지만 해도 한복 시장이 하향 곡선을 그리던 중에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으나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문시장 1지구 2층 김기억 부회장은 “코로나19가 퍼지자 결혼식·돌잔치 등 행사가 줄어들어 힘들었다. 밀린 행사가 재개되고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하며 고개를 드나 싶었더니 최근 확진자 증가세와 함께 다시 시장이 고꾸라졌다”며 “추락할 데도 없던 한복 시장이 코로나19 이후 초토화됐다. IMF 이전 하루에 몇 벌씩 잘 팔던 사람들도 너댓새 만에 한 벌을 파는가 하면 한 달 동안 못 판 사람도 있다. 또 미니멀리즘이 팽배해 판매 횟수보다 대여 횟수가 3배 더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 서문시장에는 대부분의 한복점이 1지구 2층에만 들어서있고 업체 수도 3분의 1이 줄어들어 200개소 정도만 남았다.
줄어든 수요 탓에 20여 년 전에도 40만 원대 하던 한복을 30만 원대로 가격을 낮춰 팔아도 손님이 찾지 않는다.
상인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더라도 시대가 흘러 자라나는 세대들이 고풍스런 한복을 소위 ‘구닥다리’로 인식을 해 시장이 사양화되고 한복의 명맥이 끊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부회장은 “젊은이들이 우리 옷의 우수성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복이라 하면 입어보지도 않고 불편하다며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이젠 결혼식·명절이 됐다고 더 잘 되는 것도 없다. 불과 약 20년 전만 해도 결혼을 하는 한 집안이 찾으면 가족에 친척까지 다량의 한복이 팔렸는데 지금은 양가 어머님의 한복을 찾을 뿐이다. 예전엔 고향 내려갈 때 부모님께 한복 한 벌씩 사서 들고 내려가고 하는 풍습도 사라졌다”고 전했다.
유현제 기자 hjyu@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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