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특수는 옛말…위기의 대구 서문시장 한복점

발행일 2022-01-26 14:36:0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명절·경조사·행사 등 더 이상 한복 찾지 않아

IMF 때 타격, 코로나19로 초토화…특수 상실

1980년대 호황…현재 판매 고사하고 대여 위주

25일 오전 손님 없이 적막만 도는 대구 서문시장 1지구 2층 한복매장에서 근무하는 한 한복점 상인이 고개를 힘없이 떨구고 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명절 전에는 밀려드는 손님으로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한 벌 팔면 성공한 거야.”

26일 오전 한복가게가 몰려있는 대구 서문시장 1지구 2층에서 만난 한복점을 운영하는 이순연(66·여)씨의 하소연이다.

서문시장 내 맞춤 한복점이 모두 모인 공간에는 명절을 맞아 호객 소리가 울려야 하지만 적막함만 가득했다.

한복을 둘러보는 고객들은 온데간데없고 상인들만 삼삼오오 모여 소곤대는 소리와 물건을 납품하는 거래처 직원만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다가오는 설을 맞아 ‘명절 특수’를 누려야 할 서문시장 한복매장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

1960년대부터 형성된 서문시장 1·4지구 한복매장은 고 육영수 여사의 한복사랑에 힘입어 1980년대까지 300여 한복점이 맞춤 한복을 다루며 성황을 누렸다.

1997년 외환 위기(IMF)를 겪으며 시민들이 허리끈을 졸라매자 한복 매출은 반토막이 났고 이후로도 점차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기성세대에서도 명절·경조사·행사 등을 참여할 때 응당 한복을 입는 분위기가 사라졌고,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한복을 입는 문화를 겪지 못해 맥이 끊겼다.

상인들은 2000~2010년대까지만 해도 한복 시장이 하향 곡선을 그리던 중에도 그럭저럭 버틸 만했으나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문시장 1지구 2층 김기억 부회장은 “코로나19가 퍼지자 결혼식·돌잔치 등 행사가 줄어들어 힘들었다. 밀린 행사가 재개되고 단계적 일상회복을 시작하며 고개를 드나 싶었더니 최근 확진자 증가세와 함께 다시 시장이 고꾸라졌다”며 “추락할 데도 없던 한복 시장이 코로나19 이후 초토화됐다. IMF 이전 하루에 몇 벌씩 잘 팔던 사람들도 너댓새 만에 한 벌을 파는가 하면 한 달 동안 못 판 사람도 있다. 또 미니멀리즘이 팽배해 판매 횟수보다 대여 횟수가 3배 더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 서문시장에는 대부분의 한복점이 1지구 2층에만 들어서있고 업체 수도 3분의 1이 줄어들어 200개소 정도만 남았다.

줄어든 수요 탓에 20여 년 전에도 40만 원대 하던 한복을 30만 원대로 가격을 낮춰 팔아도 손님이 찾지 않는다.

상인들은 코로나19를 극복하더라도 시대가 흘러 자라나는 세대들이 고풍스런 한복을 소위 ‘구닥다리’로 인식을 해 시장이 사양화되고 한복의 명맥이 끊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부회장은 “젊은이들이 우리 옷의 우수성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복이라 하면 입어보지도 않고 불편하다며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며 “이젠 결혼식·명절이 됐다고 더 잘 되는 것도 없다. 불과 약 20년 전만 해도 결혼을 하는 한 집안이 찾으면 가족에 친척까지 다량의 한복이 팔렸는데 지금은 양가 어머님의 한복을 찾을 뿐이다. 예전엔 고향 내려갈 때 부모님께 한복 한 벌씩 사서 들고 내려가고 하는 풍습도 사라졌다”고 전했다.

유현제 기자 hjyu@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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