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에 감도는 울음」 (2017, 제6집)
이솔희 시인은 2002년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겨울 청령포’와 단행본 ‘한국 근대시조에 나타난 이미지’가 있다.
며칠 뒤이면 설이다. 그 며칠 뒤이면 2월4일 입춘이다. 우리는 모두 입춘대길의 뜻을 안다. 곧 봄이니 누군들 설레지 않으랴. 설레다가 들레어서 발길이 곧장 들길로 향할 수 있다. 오미크론이 극성이지만 봄이 미루어질 수는 없다. 봄은 이미 와 있다고 봐도 좋을 터다. 일주일 전 통영 바닷가 바로 앞에 집필실을 마련한 시인의 초대로 지인 몇몇이 방문했다. 때로 파도가 뛰어올라 이층 창문을 두드리면서 소금 자국을 남길 정도로 바다에 가까운 곳이다. 멀고 가까운 곳에 여러 섬이 떠 있어서 아름다움을 필설로 다 할 수 없었다. 정성스럽게 가꿔 놓은 텃밭에 여러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갓 김치를 담는 갓과 꽃배추, 대파와 부추 사이로 별안간 호랑나비 두 마리가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지만 분명히 황금빛 호랑나비였다. 또 다시 봄이로구나,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봄이면 우리는 봄비를 기억한다. ‘봄비’를 말하려다 서두가 길어져 버렸다. 할머니 반짇고리에 담겨있던 색실꾸러미가 실실이 풀려나와 앞마당을 적신다, 라면서 화자는 아련한 그리움을 떠올린다. 시름을 녹이려는 듯 언 가지 적시는 손길이 미루나무 꼭대기 따라 연초록실을 풀어놓다가 벚나무 가지에 앉아 분홍색실을 공그른다. 그리하여 희미한 밑그림 따라 한 땀 한 땀 수놓아 가고 있다. 시나브로 수틀 속에 내리는 정갈한 마음과 오래된 그리움도 바늘귀에 꿰어서 후투티 날아간 자리에 목련 송이를 봄비는 피운다. 이렇듯 잔잔한 서경 속에 그리움의 정조가 잔잔히 흐른다. 아직은 이르지만 곧 이 땅에 봄이 오고 이따금 봄비가 내릴 것이다. 만화방창한 날에 봄비가 내리면 비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른 땅을 적시는 비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설날이 기대된다. 방역에 최선을 다하면서 고향을 다녀와야 하겠다. ‘봄비’가 그리는 아름다운 정경과 같은 가족 간의 화목한 만남을 그려보면서 봄을 앞당겨 생각해 보았다. 곧 화신이 북상할 것이다. 매화향기가 코앞에 느껴지는 듯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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