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토론하기, 글쓰기

발행일 2022-01-24 13:30:56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된 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의 시대, 특히 영상시대를 맞아 청소년의 문해력(文解力)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속속 나오고 있다. 디지털세대인 청소년이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로 짧은 글과 영상자료를 보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생긴 현상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호흡이 긴 문장과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는 아날로그 영역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해력이란 단순하게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넓게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와 같은 언어의 모든 영역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유네스코는 ‘다양한 내용에 대한 글과 출판물을 사용해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계산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를 맞은 요즘은 아날로그 콘텐츠뿐만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역량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해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를 상위국인 한국, 싱가포르, 에스토니아, 일본, 핀란드를 중심으로 2009년도와 비교 분석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의 핵심은 우리나라 청소년의 문해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PISA는 OECD가 3년 주기로 시행하는 국제 평가로, 우리나라에선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만 15세(중3)의 성적을 점검한다. 2021년도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연기됐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09년 분석 대상국 중에서 1위(539점)을 차지했던 읽기 평가가 2018년에는 5개국 중 4위(514점)로 떨어졌다. 특히 한국 학생들은 복합적 텍스트 읽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문장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능력인 ‘축자적 의미 표상’ 정답률(46.5%)이 9년 사이에 15%포인트 하락해 5개국 중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다. 수학 영역에서도 ‘해석하기’ 정답률이 5개국 중 가장 낮았고, ‘과학적 맥락’을 파악하는 문항에서도 9년 사이 정답률이 가장 크게 하락했다.

이에 앞서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지난 2020년 낮은 문해력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2020년 8월 온라인 포털사이트에는 ‘사흘’이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당시 광복절 이틀 뒤인 8월1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3일간 쉴 수 있게 됐다. 이에 다수 언론이 ‘사흘 연휴’라고 보도하자, 일부 누리꾼들은 “사흘 쉰다고 했으면 4일 동안 쉬는 것 아니냐”라며 어리둥절해 했다. 3일을 뜻하는 순우리말 사흘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웃픈’ 해프닝이었다.

문해력이 떨어진 것은 다양한 어휘를 공부하거나 경험할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한자어가 많은 우리말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한자교육을 포기한 현실과 함께, 문장의 구성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짧은 글과 의미 전달이 거의 불가능한 신조어가 난무하는 디지털 매체 환경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는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독서율이 감소하는 것도 문해력 저하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성인 6천명과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학생 3천320명을 대상으로 벌인 ‘2021년 국민독서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2020년 9월부터 2021년 8월까지 1년간 학생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91.4%, 종합 독서량은 34.4권으로, 전년도보다 각각 0.7%포인트와 6.6권이 줄어들었다. 이번에 처음 실시한 ‘코로나19 발생 이후 독서생활 변화’에 대한 조사문항에서 독서량과 종이책 독서시간이 증가했다는 학생의 응답은 40% 이상이었으나, 지난해 조사와 비교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관적인 인식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영상시대는 영상 기반 플랫폼인 유튜브의 등장으로 영상시대는 탄력을 받게 됐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튜브의 영향력은 가공할 정도로 커지는 추세다. 공공도서관의 경우만 해도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기승을 떨기 시작한 이후 몇 차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면서 각종 강좌나 강연을 영상콘텐츠로 제작해 유튜브에 탑재하거나, 유튜브 라이브를 활용한 스트리밍으로 비대면 서비스에 나섰다. 또한 최근 각광을 받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영상콘텐츠는 핵심 콘텐츠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도서관은 영상시대와 동행하면서 평생학습시대에 필요한 기본역량을 축적할 수 있도록 청소년을 포함한 시민 개개인이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평생교육기관이기도 한 도서관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지혜의 보고인 동시에, 대전환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인재를 육성하는데 기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요구되는 인재상은 어떤 분야의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이를 해석하고, 기존의 지식과 재조합해 창조적인 산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인재다. 더 나아가 그러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는 표현력과 공감능력을 갖춘 인재다.

김상진〈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