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실체적 진실’을 찾아야 하는가?

발행일 2022-01-20 13:50:1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김시욱 에녹 원장

조무래기들의 등하굣길 말싸움이 ‘법’에 물어보자고 끝나던 시절이 있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옳고 그름이 판단되지 않을 땐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보자고 우겨대기도 했다. 어른들의 감정싸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먹다짐으로 끝날 문제도 그 말 한마디에 물러서던 것이 우리 모습이었다. 법과 언론을 진위 판단의 최종적 권위자로 여겼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대다수의 장래 희망이 판·검사이자 기자이기도 했다. 약한 자의 대변자며 정의를 바로 세우는 사람들이 그들이라 믿었던 시절이었다.

대통령 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와 시민단체의 소송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다. 김건희 씨의 7시간 통화 공개금지 신청과 이재명 후보의 욕설 녹음파일에 대한 논쟁으로 연일 언론이 시끄럽다.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다. 그것은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이치이기도 하다. 분쟁과 서로 간의 반목을 줄여가는 방법이었고 갈등보단 화합을 강조한 선조들의 금언이 아닐 수 없다. 법에 호소하는 일을 막고자 하는 서로 간의 암묵적 합의이기도 했다. 반면에 옳고 그름에 대한 최종적 판단과 권위가 법원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권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공권력의 최후 보루로서 법원을 인정하고자 했다.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법원의 절차적 공정성과 정의의 실현을 법원에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했기에 법원의 결정과 판결은 강제성을 띄었고 따라야만 한다는 국민의식이 자리 잡아 왔다. 법원의 권위는 법관들이 많이 배운 지식인이어서도 법에 대한 전문가여서도 아니었다. 눈가리개를 하고 칼과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의 모습처럼 선입견 없이 공평무사한 법의 집행을 바라는 믿음이 그것이었다. 권위는 자신의 우월성이나 위엄이 아니라 신뢰로부터 시작되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하기에 정치적 사안의 판결마다 법원과 법관 개인에 대한 테러가 자행되고 계층, 세대 그리고 지역 간에 반목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지향은 언론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언론의 의무이자 존립 근거가 진실 보도라 할 수 있다. 언론은 최선을 다해 진실에 대한 취재와 타협 없는 보도를 통해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더불어 보도 윤리라는 측면에서 끊임없이 자기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흔히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들이 내세우는 ‘약자 보호와 사회적 책임’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했다면 그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대기업의 지원 속에 설립된 언론이라도 기득권자와 강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홍보 기관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더불어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그것을 통해 올바른 방향으로 국가와 사회가 나아가도록 힘쓰는 일이다. 특히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언론의 이러한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후보의 도덕성과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검증은 언론 보도를 통해 판단할 수 있기에 진실과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후보자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언론을 공격하는 것을 단지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의 전달’ 곧 ‘실체적 진실’로의 접근이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연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선봉장이자 최후의 보루인 법원과 언론이 이렇게 무너지는 이유는 그들에게만 있는가? 왜 그들만 적폐와 조롱거리의 대상으로 몰아 ‘무법부’와 ‘기레기’로 부르는지 반문하고 싶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성향에 맞는 인물을 사법기관의 중요 직책에 임명하는 우리 정치의 ‘구태’는 과연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지 묻고 싶다. 진영논리에 빠져 자신의 진영만이 옳다는 ‘떼법’이 만연하는 현실에서 객관성을 담보하는 판결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확증편향에 빠진 일부 지지세력의 무자비한 공격 앞에 법원과 언론의 공정성이 제대로 설까 가늠하기 어렵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실체적 진실’은 공허한 메아리로 느껴진다. 오늘의 슬픈 우리 사회의 모습은 누가 만들어 왔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김시욱 에녹 원장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