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2월22일 ‘화원공립보통학교’로 개교||1999년 축구부 창단…체육계 인재 대거

▲ 대구화원초등학교가 지난해 100주년을 맞이해 기념식을 개최했다.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동창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대구화원초등학교가 지난해 100주년을 맞이해 기념식을 개최했다.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동창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대구화원초등학교(대구 달성군 화원읍 비슬로 2580)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격동의 근현대사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학교이다.

1921년 ‘화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해 지난해 100주년을 기념했으며, 1만7천7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 415명이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행복과 사랑을 배우면서 미래를 향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특히 화원초는 FC서울 황현수, 울산 현대 이동경, 인천유나이티드 지언악, 김천 상무 강지훈, 알 와흐다FC 이명주 등 빛나는 인재를 배출하며 체육계에서 명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화원초는 달성 교육의 1번지 학교로서의 선도적인 소임을 수행에 왔으며 21세기에 걸맞은 미래 사회의 다양한 주역을 길러내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 화원초교 6학년 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화원초교 6학년 학생들이 환하게 웃으며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화원초가 지나온 발자취

화원초교는 1920년 6월20일 설립 인가를 받아 1921년 2월22일 ‘화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다.

개교 이전에는 대구 화원 천내동 420번지에 위치하던 ‘사립 일신학교’가 화원초의 시초였다.

이 학교는 1842년에 설립돼 지방 육영에 도움을 주다가 재정 곤란으로 사립학교로서의 존속이 어려워졌다.

교육에 관심이 있는 선비들이 학교가 사라지는 것에 대해 근심하던 중 자본 마련 계획을 세우고, 공립 보통학교를 세울 계획을 지역 유지들에게 보여주면서 다수의 찬성을 얻게 됐다.

▲ 1950년대 기술 수업 중인 당시 화원초 재학생들의 모습.
▲ 1950년대 기술 수업 중인 당시 화원초 재학생들의 모습.
▲ 1960년대 교실 수업 모습.
▲ 1960년대 교실 수업 모습.
그렇게 화원초는 1921년 2월22일 개교하게 됐다.

1923년 4년제 1회 졸업을 했고, 1926년 6년제 1회 졸업을 했다.

1938년 4월1일에는 ‘공립심상소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총독부는 1941년 3월에 식민지 교육의 일환으로 ‘황국신민’을 기른다는 취지로 모든 소학교의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게 했다.

이에 1941년 4월1일 ‘화원국민학교’로 명칭이 변경됐다.

1950년 6·25전쟁에는 화원초에 군대가 주둔했다가 1955년 3월16일 주둔 군대가 철수한 역사도 있다.

1957년 교가가 제정됐으며, 1972년에는 강당이 준공됐다.

1981년 5월5일 화랑상이 건립됐고, 같은 해 8월15일 세종대왕상, 9월25일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건립된 기록이 있다.

그 후 계속 노후 교실이 철거되고 신축 교실이 준공되면서 1983년 33학급 유치원 1학급이 편성됐다.

1980년 도지정 체조 시범학교로 지정됐으며, 1985년 학습지도 우수교, 1991년 국민 정신교육 부문 우수교, 체육 활동 최우수교 등으로 각종 표창을 받았다.

1996년에 들어서 ‘대구화원초등학교’로 개명해 지금의 이름을 찾는다.

1999년 축구부가 창단돼 2002년 전국 소년 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 화원역사관이 개관, 2011년 잔디운동장이 조성됐으며 2017년 다목적 강당 ‘꿈마루’가 완공됐다.

▲ 1970년도에 수학여행을 간 당시 재학생들의 단체사진.
▲ 1970년도에 수학여행을 간 당시 재학생들의 단체사진.
▲ 1980년대 수업을 듣는 당시 재학생들의 모습.
▲ 1980년대 수업을 듣는 당시 재학생들의 모습.
◆교육과 철학의 변천사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거친 화원초교는 시대별 지역 근대교육의 터전을 닦았고, 자유 독립을 염원하며 민족 인재 양성을 목표로 교육에 임해왔다.

1970년 이후 학교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교육목표는 주로 애국애족 정신 함양, 창조, 자조의 양성, 근면·협동 정신의 앙양이었다.

1980년대에는 충효, 건강, 질서, 기능 향상에 목표를 뒀으며, 1990년도부터 2005년까지는 애국, 도덕, 건강인, 자주인, 창조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다가 2006년부터 애국과 도덕이 도덕인으로 통합됐다.

2010년 이후에는 감성적 역량이 새롭게 더해지면서 도덕, 자주, 감성, 창의적 인간을 기르고자 노력했다.

2020년에 들어서는 학생의 주도성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적극 반영해 학교 교육목표를 새롭게 세우며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화원초는 학생의 미래역량을 기르며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따뜻한 교육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식민지 교육(1921~1945년) 시기에는 우리 민족의 저항기 교육으로서 식민지 교육의 기본 방침을 따라야 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일본제국주의 정책에 복종할 신민을 만들기 위해 우민화 교육정책을 폈다.

일본어 보급과 일본 국민이 될 성격을 함양하게 하고 보통 수준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4년제 보통학교를 설치하게 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당시 민족의 독립운동과 민족교육 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개교 당시 화원초의 학제는 조선교육령에 따라 4년제(한국인 보통학교, 당시 일본인 소학교는 6년제)로 1923년 3월23일 4년제 1회 졸업을 맞이한 후 학제 변경에 따라 6년제가 실시되면서 1926년 3월23일 6년제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1945년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이 된 후 과도기로 인해 졸업식 날짜가 변경됐다.

개교 이래 22년 동안 매년 3월에 이뤄졌던 졸업식이 1946년에는 3월이 아닌 7월2일에 거행되기도 했다.

이후 1947년 7월17일, 1948년에는 6월26일, 1949년에는 7월20일에 각각 졸업식이 개최됐다.

6·25전쟁이라는 우리 민족의 크나큰 시련으로 인해 1950년 6월25일 본교에 군대가 주둔했다가 1955년 3월16일 주군 군대가 철수한 역사도 있다.

당시 화원초는 학업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수업은 계속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졸업 학생 수는 큰 변동 없이 100여 명 전후를 유지하다 1953년에는 갑자기 75명으로 줄기도 했다.

이후 1954년부터 161명으로 늘어나더니 그 상승세가 꾸준히 유지됐다.

현재 화원초는 달성 1번지 학교다.

명성과 전통을 바탕으로 한 인성과 능력을 갖춘 미래지향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 교육과정 중심, 학생 중심의 기초·기본교육에 충실한 학교로 거듭나고 있다.

또 자율 책임 협동을 바탕으로 함께 하는 민주적인 학교, 학교 공동체 모두가 함께 꿈을 가꾸어 나가는 학교, 창의성 및 진로 교육을 충실히 하며 폭력, 욕설, 왕따가 없는 행복한 학교, 운동의 생활화로 즐겁고 활기찬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다.

▲ 1990년 후반 축구부 창단식의 모습.
▲ 1990년 후반 축구부 창단식의 모습.
◆학교의 자랑, 또 자랑스러운 동문

화원초는 최다 국가대표, 프로선수를 배출해 낸 역사와 전통이 깃든 학교로도 유명하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화원초 교기인 축구부는 전국소년체전에서 3회 입상했으며, 최근 3년간 대구 대표로 연속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했다.

현재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축구부 훈련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배드민턴 부문의 청소년체육활동 지원 사업 및 토요스포츠데이, 스포츠클럽, 몰입놀이교육 등을 통해 학생들의 체력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원초를 빛낸 축구선수에는 FC서울 황현수, 울산 현대 이동경, 인천유나이티드 지언악, 김천 상무 강지훈, 알 와흐다FC 이명주 등이 있다.

또 화원초는 21세기에 걸맞는 SW(소프트웨어)교육 선도학교 운영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한 교육 인프라 구축 및 학생 지도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최적의 교육 인프라 구축과 각종 인공지능체험활동 위주 수업 시행 및 동아리 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와 함께 학년별 특색 있는 프로젝트 수업 및 꿈끼 탐색 주간 운영, 국악부 운영, 진로와 관련된 다양한 교육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이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고 꿈과 끼를 펼치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화원초의 동문으로는 현 김문오 달성군수, 박경호(39회) 전 달성군수가 있다.

또 책 ‘why’ 시리즈의 아동도서 전문출판사 ‘예림당’ 나춘호 회장(33회), 전 대구 시·군의원을 역임했던 이경식(32회), 이철웅(32회), 표명찬(34회), 정태일(35회), 서보강(38회), 조성제(42회), 하용하(44회), 박상태(51회), 전성배(53회) 등도 배출했다.

이와 함께 이석원 대구달성산림조합장, 이인중 화성산업 명예회장, 이홍중 화성산업대표, 도훈찬 화성개발대표, 김칠환 동진건설대표, 김진천 화원읍장, 김태환(47회) 화원농협장, 홍진웅(49회) 화원새마을금고이사장 등이 있다.

▲ 김훈술 화원초등학교 교장이 화원초 운동장에서 재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김훈술 화원초등학교 교장이 화원초 운동장에서 재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훈술 화원초등학교 교장 인터뷰

▲ 김훈술 화원초 교장이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며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굳건히 하겠다”고 말했다.
▲ 김훈술 화원초 교장이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며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굳건히 하겠다”고 말했다.
“100주년을 넘긴 자랑스러운 화원초는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보며 미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굳건히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건강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습니다.”

김훈술 화원초등학교 교장이 학생들의 발전뿐 아닌 건강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학교를 운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교장은 “전통을 자랑하는 화원초 축구부를 비롯해 배드민턴 동아리, 국악동아리, 연극동아리, SW 동아리 등 다양한 동아리 운영과 학생 개개인에 기초한 맞춤형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며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기초학력 채움 학교의 운영으로 학생들의 행복한 삶을 준비하는 기초교육의 산실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격동기를 거치며 보람찬 100년의 역사를 토대로 학생들의 앞날을 위한 미래교육 환경 조성에 초점을 둘 계획이다.

그는 “화원 발명교육센터와 상상제작소를 활용해 학생들의 미래교육 체험의 장을 확장하고 창의융합교육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며 “특히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고 있는 학생들의 체험 기회를 학교 안에서 안전하게 제공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이 있는 화원초의 학교 문화를 정착하는 것에도 만전을 기한다.

그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로 지정돼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학교 공간 확보 등 학생들에게 안전과 학습권을 보장하면서 모두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미래학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미래교육환경에 부합되는 IT, 체육, 공연 및 전시, 예술 교육 환경과 시설과 달성발명센터, 상상제작소는 새로운 100년을 위한 학생들의 미래역량 신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지난해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화원초 학생들이 미래의 행복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량과 인성을 갖출 수 있는 학교 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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