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석 기상청장

체감온도 영하 69℃.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선 상상조차 힘든 낯선 수치의 기온이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와 비슷한 위도를 가진 북반구 일부 지역에서 이러한 극단적 기온하강 현상이 나타났다면 믿겠는가. 폭설을 동반한 최강 한파가 미국 동부를 강타한 2018년 1월, 뉴햄프셔주 마운트 워싱턴 지역은 일최저기온이 영하 38℃까지 내려가며 혹한의 기록을 세웠다. 강풍과 더해져 체감온도가 영하 69.4℃까지 떨어지자, 미 보건당국은 피부 노출 시 10분 안에 동상에 걸릴 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했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유럽 곳곳이 강한 한파와 폭설 등으로 몸살을 앓았고, 중국 중동부 지역에도 눈 폭탄이 마을을 덮쳐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심지어 사하라 사막에 40㎝가량의 폭설이 내리면서 낙타가 눈 위를 걷는 흔치 않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도 상당히 추운 겨울을 겪으면서 한랭질환자가 다수 발생하는 등 피해가 컸다. 이 기간 연일 보도되는 기사를 통해 당시 추위의 원인으로 지목된 ‘북극진동’이라는 단어를 적잖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북극진동이란 북극 지역의 차가운 공기로 이루어진 대규모 소용돌이가 수십 일, 혹은 수십 년을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것을 말한다. 이 차가운 한기 덩어리인 극(polar) 소용돌이가 중위도로 남하하지 않도록 막는 건 제트기류인데, 시간당 최대 500㎞의 속도를 가지는 강력한 제트기류의 흐름이 약해지면 북극의 냉기가 광범위하게 새어나오게 된다. 이는 팽이의 회전원리와도 일맥상통한데, 팽이가 빠르게 돌 때는 작고 일정한 회전반경을 가지다가 속도가 느려지는 순간 중심축 자체가 흔들리며 반경의 범위가 구불구불 커지는 것과 비슷하다.

제트기류가 약해져 한기가 남하할 때 북극진동은 음의 값을 가진다. 음의 북극진동에서 비롯된 한파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그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이 카라-바렌츠해의 빙하 면적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극지방의 빙하 면적이 평년보다 줄어들면 상대적으로 따뜻해진 바닷물이 평소보다 높은 열과 많은 양의 수증기를 방출하고, 이로 인해 극지방과 중위도의 온도 차가 줄어들게 된다. 이는 곧 제트기류의 약화로 이어지며 중위도 지역에 한파를 몰고 온다.

특히 작년 겨울은 혹한을 자주 만난 기간이었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찬 공기가 내려와 대륙 고기압을 발달시켰고, 우리나라 북동쪽에 발달된 저기압이 북풍 기류를 강화하면서 한파가 자주 나타났다. 반면, 2019년 12월에서 2020년 2월에 해당하는 재작년 겨울은 양의 북극진동 조건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따뜻한 겨울 기온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이번 겨울 날씨는 어떨까? 기상청은 지난달 23일 이번 겨울철 3개월 기상전망을 발표했다. 1월까지는 기온이 평년보다 비슷하거나 낮을 확률이 각각 40%, 2월은 기온이 평년과 비슷할 확률이 50%이며, 찬 대륙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질 때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이번 겨울 강수량은 평년보다 비슷하거나 적을 확률이 각각 40%이며, 대체로 건조한 날이 많겠으나 12월은 찬 대륙고기압이 확장하면서 지형적 영향으로 서해안을 중심으로 많은 눈이 오는 곳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올겨울 한파가 예상될 때에는 추위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무리한 신체활동이나 장시간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주기적으로 따뜻한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충분한 영양 섭취와 수분 공급을 유지하고 따뜻한 옷과 음료 등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한파가 예보돼 있는 경우 TV, 인터넷 등을 통해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한파 관련 기상 상황을 수시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박광석 기상청장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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