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애 시인

아랫마을 입구부터 수 킬로미터에 걸쳐 있는 은행나무 가로수에 노란 물이 드는가 했더니 어느 하루의 세찬 바람에 잎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 덕분에 길가에는 때아닌 노란색의 향연이 펼쳐졌지만 나무들은 황량한 줄기를 드러내었고, 숨어 있던 까치집도 바람결에 드러났다. 앞으로 나무나 까치들이나 겨울의 찬바람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노란 은행나무 이파리만이 아니다. 곡란리의 마을회관 앞에는 소녀상 조각 작품이 하나 있는데, 투박한 시골 소녀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이 작품은 그리 예쁘지 않던 어릴 적의 단발머리 소녀 모습을 하고 있다. 소녀상에는 겨울이면 코흘리개 아이들이 마을을 뛰어다니던 모습이 아른거리지만 실상 그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이제는 모두 늙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들이다. 가끔 소녀상 앞을 지날 때면 마을의 어르신들이 그 소녀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해하곤 한다.

할머니들의 어릴 적 그대로의 모습인 소녀상은 아마도 동네 젊은이들이 늙어가는 어머니들이 애틋해 세워 둔 듯한데 희한하게도 그 소녀상에는 마을의 모든 할머니들의 얼굴이 스며 있다. 봄부터 겨울까지 일년 내내 농사일을 하고 마을의 좌판 장터에서 물건을 파는 할머니부터 산책가는 나를 불러 나물을 뜯어 주시던 할머니, 굽은 허리로 유모차를 끌고 운동을 나오시는 할머니 등 저마다 색깔이 다르고 말투도 다른 할머니들의 얼굴이 모두 있다. 그래서 그 소녀상을 보면 어떨 때는 넓은 밭에 배추를 키워 김장을 담던 할머니가, 또 어떨 때는 좌판에 앉아 수다 떠는 할머니가, 때로는 뒷짐 지고 설렁설렁 부채질을 하며 산책 다니는 할머니가 떠오른다. 볼살이 적당히 통통하고 인심 좋게 웃고 있는 입과 쳐진 광대뼈까지 딱히 어느 누구를 닮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모두를 닮았으므로 소녀상이라고 해도 좋고 어머니상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다.

한번은 산책을 하다가 어느 할머니집에 들렀다. 대문이야 있는 둥 없는 둥 늘 열려 있지만 집에서 할머니를 보는 일이 쉽지 않은지라 마침 마당에 들깨를 널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고 들어간 것이다. 할머니는 저온 창고에서 과일을 종류별로 찾아오더니 깎아 먹으라고 칼을 주고는 다시 하던 일을 하고 계셨다. 들깨를 널고는 무름병으로 일찍 수확한 배추를 다듬고, 찐쌀을 만들기 위해 가마솥의 불을 돌보기도 하면서 줄곧 나보고는 많이 먹으라고 당부를 하셨다. 좀 쉬시라고 해도 쉴 여가가 어디 있냐고, 그러면서도 막 이사 온 나의 호구 조사를 위해서는 부지런히 이것저것 물어 보셨다.

다시 한번 그 할머니 집에 놀러가야지 해 놓고는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 버렸는데 마을 회관 앞을 지나가면 소녀상에서 그 할머니 얼굴을 본다. 이것저것 챙겨주시던 그 부지런한 손길이며, 우렁우렁한 목소리며, 자꾸만 더 챙겨주시던 농산물들이 소녀상의 미소에서 어른거리는 것이다.

수십번의 계절이 바뀌고 찬 바람이 부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할머니들의 얼굴은 비슷하게 생겨서 얼굴 구분이 쉽지 않다. 너무나 닮은 할머니들은 어느 할머니가 어느 할머니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아 동네를 다니면 갓 시집 온 새댁처럼 만날 때마다 무턱대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한다. 할머니들은 어찌나 닮았는지 집으로 놀러오라는 말에 대답은 잘 하지만 어느 집으로 놀러 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같은 바람과 햇볕을 쬐고 비슷한 삶을 살아오신 할머니들은 이제 굳이 신산스런 서로의 삶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 그렇게 다독이며 살아오다 보니 얼굴마저도 닮아 버린 것인가.

소녀상을 볼 때면 내가 아는 동네 할머니들의 얼굴이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살아온 삶보다 살아갈 삶이 훨씬 짧은 할머니들은, 그러나 나보다 훨씬 일도 잘하고 목소리도 우렁우렁하며 활기가 넘친다.

몇 번의 찬 바람에 나뭇잎들이 모두 떨어지고 황량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서 있지만 사실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미 작은 잎눈이 새로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할머니들은 이미 속에 작은 잎눈을 품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 그 잎눈의 힘으로 그렇게 우렁우렁 고함도 지르고 농사일도 거뜬히 하시는 것은 아닐까. 소녀상을 지나다 보며 아무래도 할머니들이 아침마다 소녀상을 보며 젊은 날의 기운을 받는 것은 아닐까 싶어 겨울의 찬바람이 무색하기만 하다.

천영애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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