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한 한류 콘텐츠도 나오길

발행일 2021-11-30 10:57:37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네 명의 버려진 아이들이 있다. 일본 영화 이야기다. 열두 살의 장남 아키라와 두 살 아래 여동생 교코, 다섯 살 아래 남동생 시게루, 그리고 네 살인 막내 유키이다. 일본의 수도 도쿄 도심 한복판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네 아이는 굶주리며 죽어간다. 아버지 없이 아이를 키우던 엄마는 큰아들에게 돈 몇 푼 남기고는 다른 남자에게 떠나간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어느 날 막내 유키가 담벼락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고, 죽어나갈 동안 주변의 어른들은 이 사실을 모른 체한다. 굳이 네 아이의 불행을 알려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공무원들마저도 행정적으로만 다루려 할뿐 외면한다. 부모의 방임, 주변의 무관심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겪는 비극은 2004년 개봉한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영화는 1988년 도쿄에서 실제 일어난 ‘나시 스가모의 네 아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이런 기막힌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공지영 작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도가니’가 그렇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교장과 교사들이 장애아를 상대로 저지른 성폭력과 학대를 그렸다. 원작 소설은 실제 광주 인화학교에서 2000년부터 5년여에 걸쳐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2019년 제작된 영화 ‘어린 의뢰인’도 2013년 8월 발생한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 사건을 다뤘다.

지난해 10월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가 장기간 심하게 학대를 당한 후 숨진 사건 이후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한 이른바 ‘정인이법’(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아동학대는 여전하다. 이달 29일엔 ‘말을 듣지 않는다’며 세 살짜리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30대 의붓어머니가 ‘정인이법’을 적용받아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포털사이트에서 ‘아동학대’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이달 들어서만해도 여러 건의 아동학대 사례가 나열된다. ‘정인이 사건’이후 전국민적인 분노와 아동학대 예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음에도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난 19일은 아동학대예방의 날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아동학대로 모두 43명이 숨졌다. 2019년에도 아동학대로 42명이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아동학대 사례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1만 1천715건 수준이던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2020년 3만 905건으로 늘었다.

요즘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신체적인 학대 뿐 아니라 방임 상태에 놓여있는 아이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2년여에 걸친 사회적 거리두기와 비대면 활동 증가로 아이들이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아동학대 발생 가능성은 높아졌는데 이를 조기 발견하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앞서 말한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숨진 세 살짜리 아들의 경우다. 경찰 신고도 없었고 학대 의심 정황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들이 숨진 뒤에야 아동학대 사실이 드러났다. 코로나19로 어린이집 등에서도 가정돌봄을 권하면서 외부기관의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파고든 비극이었다.

영화 ‘도가니’나 ‘어린 의뢰인’은 현실의 한국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 역시 일본 영화라고 해서 한국의 현실과 다른 것은 아니다. 영화는 요즘의 시대를 대변한다고 하지 않던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한국 사회의 병폐를 조명한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도 오징어 게임은 높은 가계부채, 자살 등 한국사회가 품고 있는 잔혹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젠 이런 어두운 현실을 드러내는 영화나 드라마보다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내용의 영화가 나와야 할 때다.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넷플릭스에도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 같은 내용보다 작은 선행이 모여 가슴 따뜻한 기적을 일구는 내용의 영화·드라마가 나오길 기대한다. 불법 난민소년을 도우려는 가난한 구두닦이와 이웃들의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프랑스 영화 ‘르 아브르’처럼 아동학대가 아니라 이들을 잘 보듬어가는 한국사회가 영화로 그려지길 기대한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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