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사라진 버스전용차로, 승용차들이 점거||도로 여건 탓 단속 무용지물, 사고 위험도

▲ 지난 25일 오후 6시30분께 대구 북구 칠곡중앙대로에 설치된 버스전용차로의 모습. 바로 위 단속카메라를 비웃기라도 하듯 버스는 온데간데없이 승용차들로 가득하다.
▲ 지난 25일 오후 6시30분께 대구 북구 칠곡중앙대로에 설치된 버스전용차로의 모습. 바로 위 단속카메라를 비웃기라도 하듯 버스는 온데간데없이 승용차들로 가득하다.
“앗, 위험해!”

퇴근길이 한창이던 지난 25일 오후 6시께 대구 북구 태전동의 한 버스정류장 앞에서는 위험천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버스정류장에 도달한 시내버스가 승용차 등에 밀려 2차로에 서서 승객을 내려주던 중 차량과 버스 사이를 질주하던 오토바이가 승객을 덮칠 뻔 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의 외마디 외침에 오토바이가 핸들을 꺾으며 사고는 피했지만, 승객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문제는 승용차들이 점령하고 있던 도로가 버스전용차로라는 점이다.

출·퇴근 시간에 버스 외 차량이 이용하면 과태료(5만 원) 대상이지만, 승용차들은 버스에 차로를 양보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버스정류장과 불과 10m가량 떨어진 곳에 단속카메라가 있었지만, 운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날 퇴근 시간 내내 승용차들의 버스전용차로 불법 점거가 이어졌다. 버스전용차로에 버스는 없었다.

주민들은 파란 선만 그어져 있을 뿐 수년 전부터 버스전용차로가 유명무실해졌다고 했다.

칠곡주민 최지훈(36)씨는 “버스전용차로에서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운전자들이 간파한 지 오래다. 오히려 버스에 길을 비켜주려 하면 뒤에서 경적을 울려댈 정도”라고 말했다.

단속이 무용지물이 된 데에는 도로 여건과도 무관하지 않다.

해당 교차로 진입 직전과 직후에 각각 단속카메라가 설치됐지만, 정작 버스전용차로를 점령한 차량 대부분은 칠곡3지구 등으로 향하는 우회전 차량이다.

두 곳에서 연달아 적발돼야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결국 직진 차량이 아닌 우회전 차량엔 해당 사항이 없는 것이다.

버스전용차로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정시성 확보가 힘들어진 것은 물론 전용차로를 뺏긴 버스가 일반차로로 달리다가 정류소 앞에서 급하게 끼어드는 위험한 행위가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시내버스 기사 A씨는 “이러다 큰 사고라도 날까 봐 겁난다. 시에 민원을 넣어도 단속하겠다는 의례적 답변만 돌아온다”고 말했다.

버스전용차로가 유명무실화된 게 이곳만의 풍경은 아니다.

지난 26일 오전 8시30분께 동구 아양초등학교 앞에서는 자녀를 통학시키려는 차량들이 버스전용차로를 가득 메웠다. 통학 차량이 자취를 감추자 다시 20m 앞에 있는 구청으로 진입하기 위해 승용차들이 버스전용차로를 점거했다.

출·퇴근 시간대 극심한 정체로 유명한 아양로에서 시내버스들은 꽉 막힌 일반차로로 머리를 들이밀며 곡예운전을 해야 했다. 끼어들려는 버스와 끼워주지 않으려는 승용차 간의 기 싸움도 벌어졌다.

운전자 김치훈(45·수성구)씨는 “단속도 이뤄지지 않는 버스전용차로는 효과도 없고 시민들에게 혼선만 주고 있다. 이럴 거면 차라리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토로했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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