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크리스마스

발행일 2021-11-28 14:42:5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빨간 포인세티아가 손짓한다. 잎을 떨군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위로라도 하듯이 햇살 아래 화사하게 앉아있다. 자그만 화분에서 목을 내민 녀석들은 이제 머잖아 눈이 내리고 캐럴이 들려올 축제를 기다리는 것 같다.

한 달도 채 안 남지 않은 올해의 크리스마스. 코로나로 지친 아이들에게 분위기만이라도 즐겨보게 해주고 싶었다. 커다란 트리들을 마련하고 금색의 종과 은색의 종들을 매달고 색색의 별을 만들어 붙였다. 초록의 트리에 올려진 장식들은 저마다 빛을 내며 축제를 한껏 즐겁게 해줄 태세다. 작은 꼬마전구들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층을 내어 감았다. 눈송이도 붙이고 울타리도 만들어 크리스마스트리의 발이 시리지 않게 감싸주었다. 깜빡이는 불빛에 아이들은 벌써 하얀 눈밭을 뛰어다니는 듯한 표정이다. 누군가를 가만히 떠올려보면서 무엇으로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다. 힘들었을 아이들, 그들보다 더 힘겨웠을 어른들의 지친 표정이 스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 아래 모여들어 지나간 시간, 어려웠던 순간들을 저 멀리 날려 보내 버릴 것이리라 믿으며 너도, 나도 우리 모두 스마트폰 화면을 눌러댄다. 추억을 만들며 언젠가 다시 꺼내 오늘의 기억을 찬찬히 되새겨 보리라. 따스하게 반짝이는 불빛과 앙증맞게 매달린 종들과 작은 선물상자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 주리라. ‘지금, 이 순간’ 초록의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서서는 걱정은 모두 잊어버리고 미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할머니 손을 잡고 찾아온 자그마한 아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찬찬히 들여다보니 눈물 자국까지 보인다.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인가? 물어보니 고개를 떨구고 흐느낀다. 할머니도 걱정이 태산인 모양이다. 아이 아빠는 사업을 하느라 멀리 떨어진 나라에 나가 있고, 코로나가 아직 수그러들지 않으니 귀국하지도 못하고 있는데 아이가 초경을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가슴이 아프다. 다리가 아프다고 해도 아이어머니가 어릴 적에 집을 떠나 버려서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가? 싶어서 혼내기만 했단다. 말이 별로 없이 지내던 아이가 어느 날 학교에서 고추장이 옷에 묻었다면서 귀가했다. 살펴보니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고 한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니 성조숙증인 것 같으니 병원에 얼른 가서 치료받으라는 이야기와 함께 선물을 하나 보내줬다고 한다. 초경 처리에 미숙한 아이를 걱정해 그날이 되면 학교 근처에서 기다리는 조모가 안쓰러웠을까. 자기 아이를 대하듯 측은해서 그런 선물을 해주었을까. 할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초경하는 아이들이 일회용 패드를 잘 사용하지 못할 때 입는 생리 팬티인 모양이었다. 아이가 보여준 설명서에는 “네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라는 의미의 속옷이었다. 믿을 수 있는 위생 팬티로 일회용 패드가 필요 없는 것으로 자유로운 그날을 즐기도록 입는 생리 팬티라고 적혀있었다. 초경을 시작하는 아이나 생리대를 갈 시간이 넉넉지 않은 분들께 추천한다고 자세하게 적힌 설명서를 보니 그래도 조금 마음이 놓인다. 방수 처리도 잘 돼있는 제품이라고 하니 사용하기도 편리할 듯 보였다. 다른 옷을 세탁하듯이 미지근한 물에 넣었다가 뒤집어 망에 넣은 후 세탁기 돌리면 된다는 아이의 자세한 설명에 어느덧 부쩍 성숙한 모습이 엿보인다. 처음에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진료실에 들어왔을 때와는 딴판으로 아주 밝아진 아이의 목소리에 안도하며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가 곁에 있고 아버지가 집에 함께 했더라면 저 어린아이가 저리 철이 일찍 들었을까.

여자가 돼간다고 아이 아버지는 그날을 기념해 주었을까. 너무 빨리 찾아온 아이의 사춘기. 게다가 조발 초경에 얼마나 당황했으랴. 그나마 소변을 참기 힘들어하는 어른들에게 입는 일회용 기저귀가 새로운 자유를 주었듯이 일찍 찾아온 초경을 혼자서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아주 편리한 제품이 생겨서 얼마나 다행인지. 세상 참으로 빠르게 변화해간다. 자율주행차만 거리를 누비는 것이 아니라 그날(?)에도 획기적인 흡수성으로 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특수 기능성 속옷이 나와 있었다니. 효과적으로 건조까지 시켜 피부에 예민하게 작용하지 않게 만든 디자인이라고 하니 아이들의 삶의 질이 팍팍 올라갈 것 같아서 선물 같다.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날에도 기분 좋은 생각으로 환경도 보존하면서 경제에도 보탬을 주면서 잘 버텨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삶에는 고난도 있고 시련도 있을 테지만, 많은 순간을 잘 버텨낸 이들에게는 진한 감동이 있지 않던가. 바야흐로 크리스마스다.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미리 축하하면서 언제나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바란다.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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