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나는 해마다 문항 분석을 지금처럼 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지난해보다 몇 점 어려웠고 쉬웠다는 분석은 거의 의미가 없고 실질적인 가치도 없다. 일정 점수 이상이면 모두에게 동일한 등급을 주는 영어, 한국사, 제2외국어는 난도가 중요하다. 쉬우면 보다 많은 수험생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어, 수학, 탐구는 상대평가다. 원점수 100점 만점에 50점이라도 그 과목 응시자의 4% 안에 든다면 1등급을 받는다. 문제가 아주 쉬우면 90점이라도 3등급이 될 수 있다. 문제가 어려우면 변별력이 높아 최상위권에서는 한 문제 실수로 운명이 바뀌는 억울한 일이 줄어든다. 문제가 쉬울 때는 시험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 수험생이 많아 재수생이 늘어난다. 수능시험의 현실적인 목적은 대학의 전형 유형에 따라 과목별 등급, 표준점수, 백분위 점수 등을 서로 조합해 수험생을 성적 순으로 줄 세우는 것이다. 그런 다음 대학과 학과의 서열에 따라 점수대별로 잘라서 학생을 데려가는 것이다. 수험생과 학부모, 대학 당국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것은 일렬종대다. 수능이 어려우면 앞뒤 간격이 넓어져 학생은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고, 대학은 입학 사정이 더 수월하다. 문제가 쉬우면 일렬종대가 아니라 수천 열 횡대가 될 수도 있다. 같은 점수대에 수천 명이 있으니 수험생은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런 해에는 치열한 눈치작전이 전개되고 점집의 무속인까지 입시에 가담한다.
이제 좀 근본적인 문제로 눈을 돌리자. 전국에 200여 개의 4년제 대학이 있다. 그중에서 중하위권 대학 상당수가 수능 난도에는 관심이 없다. 모집정원을 채울 수 없는데 수능 난도가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의예과 같은 인기 학과는 소수점 자리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으니 좀 더 변별력이 높은 수능을 원할 수 있다. 연초 지방 어느 국립대에 수학 8등급 학생이 수학과에 입학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관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오죽 학생이 없으면 수학 8등급이 수학과에 합격했겠느냐고 말할 수 있다. 수능은 8등급이라도 수학에 정말 흥미가 있다면 수학과에서 차근차근 공부할 수도 있지 않은가. 대학은 학생들을 잘 가르쳐 졸업 후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하며, 학생에게 실적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과거 부모 세대가 누렸던 특혜를 기대하기 어렵다.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학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어느 대학 출신이든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면 졸업 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은 ‘한번 해병 영원한 해병’이 통용되던 시대가 아니다.
수험생은 자기에게 맞는 대학에 가서 멀리 바라보며 긴 호흡의 승부를 겨루겠다는 각오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모든 분야에서 패자부활전이 보장되게 해야 한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이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힘과 용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힘겨운 코로나 상황을 견뎌내고 무사히 시험을 마친 수험생과 학부모께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