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HCC

발행일 2021-10-24 16:06:1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하늘은 푸르고 산천은 붉게 물들어 간다. 하얀 구름도 두둥실 높이 떠 있고 누렇게 물들어가는 들판 길을 오랜만에 한가로이 달리니 마음이 평화롭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의 흰 머리를 감상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텃밭으로 향한다. 한창 꽃을 피우던 어린 고추들이 얼마나 자랐을까, 어린 호박은 또 얼마나 굵어졌을까. 궁금한 마음에 밭머리에 닿자마자 눈을 들어 살펴보니 아니 이것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잎들이란 잎은 모두 뜨거운 물에 삶아버리기라도 한 듯 까맣게 풀이 다 죽어 있는 것이 아닌가. 아~그러고 보니 어제 그제가 찬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었던가. 어김없이 찾아드는 절기와 그것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는 자연이 참으로 신비롭게 다가온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닥쳐온 지도, 온통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한 지도 어느덧 2년이 지나간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소중한 이들의 목숨까지 수도 없이 빼앗아 가버려도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우리들, 상강이라는 절기에 내린 이슬방울에 힘없이 검게 시들어 처져 죽은 듯이 늘어진 고춧잎을 보면서 우리들의 지난 힘든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정말이지 하라면 하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정부의 방침에 얼마나 유치원생들처럼 잘 따라 하지 않았던가. 모이지 말라고 하면 모이지 않았고 만나지 말라고 하면 만나지 않았었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약자의 용어대로 하면 ‘HHCC’라고 한다던가. H(하라면)H(하고)C(시키면)C(시키는 대로) 하는 국민이 우리나라 국민 말고 어느 나라에 더 있겠는가. 날마다 뉴스에 귀 기울여서 발표되는 코로나 확진자의 숫자에 울고 웃는 날들의 연속이지 않았던가. 설에도 추석에도 고향의 부모님도 찾아뵙지 못하고 제대로 성묘도 못 하고 혼사를 미뤄야 하는 젊은이들도 많지 않았던가.

코로나19 방역 체계가 다음 달 중에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전환된다. 확진자 발생 억제에 집중하는 현행의 방역 체계에서는 국민들이 일상생활이 제약을 받았기에 위드 코로나 방역 체계에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시대에서는 방역 조치는 완화되지만,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증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개개인의 행위를 제약하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만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본 방역 수칙 준수와 개개인의 인식 변화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확진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 당국에서도 역학 조사를 더 체계적으로 강화하거나 현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지만, 향후 신규 확진자에 대한 역학 조사 범위는 일정 부분 축소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그러니 바뀐 체계에서도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 기본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건강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더 잘 규칙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코로나가 끝나지 않았지만, 가을이 찾아왔다. 무언가 하나를 시작하고 싶었다. 생활 속에서 운동을 해야지 결심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출퇴근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하고, 더러는 흔들리는 버스도 타보리라 자그만 결심을 했다. 지하철을 이용하자고 마음먹은 날, 무심코 차를 가지고 집을 나와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지하철 환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하철을 탔다. 조금이라도 걸어 다녀 보려는 결심을 실행해야 할 것 아닌가. 지하철 안에서 자리가 나도 앉지 않고 서 있기. 가만히 서 있는데 내 자리 앞의 나이 지긋한 할머니께서 마스크를 꺼내어 맞은편 아저씨에게 자꾸만 마스트를 권하시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니 그분이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다. 그때서야 그 아저씨는 깜짝 놀라며 성경을 읽던 손은 놓더니 가슴 안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어 끼는 것이 아닌가. 성경책 읽느라 깜빡하고 있었다면서 큰소리로 “미안합니다~!” 하셨다. 이제는 마스크를 쓰는 것도, 거리두기 하는 것도, 손 씻기 하는 것도, 우리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위드 코로나! 일상회복으로 차츰 나아가면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으랴.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배달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살이 찌고, 비만으로 인해 성호르몬이 조기에 분비돼 성조숙증으로 내원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심지어 초등 3학년생이 초경을 시작해 찾아오기도 했다. 지극정성으로 엄마 없이 손녀를 돌봤다는 할머니는 모두가 자신의 잘못이라며 울음을 터뜨리신다. 정말이지 코로나가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모두 ‘HHCC’를 잘해야 할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여유로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살아보기 위해서라도.

정명희 정명희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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