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초롱초롱하게 생긴 초등학교 4학년생이 머리가 아프다며 엄마와 함께 진료실에 왔다. 머리 전체가 조이는 듯이 아팠는데, 몇 개월동안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학교 갈 때 쯤이면 더욱 심해진다고 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성 두통의 가능성이 많아 간단한 심리검사를 시행했는데, 우울 척도가 조금 높게 나오면서 지능검사에서 IQ(인지척도)가 146점이 나왔다. 이렇게 높은 점수를 이전에 본 적이 없어 깜짝 놀랐다. 어머니를 잠시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아이에게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용히 물었다. 아이는 학교에 가면 여러가지 궁금한 게 많아 선생님에게 자주 질문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토끼가 달을 이렇게 파 먹었는데 남은 것을 어떻게 계산하느냐는 식 이었다. 매사의 질문이 이런 식이어서 선생님이 어머니를 불러 사정을 설명하면서 아이를 지도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고, 화가 난 엄마는 학교가서 절대 질문을 하지 말라고 야단을 쳤다. 이 후 아이의 두통이 점점 악화된 것을 확인했다.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오면서 여러가지 화제를 낳고 있다. 202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탄자니아 출신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2)는 수상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피싱인 줄 알고 화를 냈다는 에피소드도 있고, 유행성 출혈열을 일으키는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이호왕(93) 고려대 명예교수가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을 확률이 높다는 소식에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노벨의학상 수상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2005년, 헬리코박터를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호주의 병리학자 로빈 워런(Robin Warren)과 내과의사 배리 마셜(Barry Marshal)이다. 내과 전공의였던 마샬이 병리학실에 파견 나가서 워렌 박사를 만나 위 속에 세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꼈다. 당시만 해도 위 속에 세균이 살 수 있다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위는 염산이나 황산보다 더 강한 산성으로 위벽 세포로부터 분비되는 위산의 pH가 0.78이나 되기 때문이다. 마셜은 약 10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생체검사를 시도해 특정 박테리아가 모든 위염과 위궤양, 십이지궤양 환자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박테리아를 증명하기 위해 곧 배양실험에 착수했으나 수없이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연구에 지친 그는 휴가를 떠나게 되고,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인큐베이터 안에 균이 배양돼 있었다. 휴가를 떠날 때 인큐베이터에 들어 있는 위 점막 균을 버린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위염과 소화성 궤양 같은 소화기 질환은 생활습관과 스트레스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만 믿고 있었지만, 마샬 박사는 헬리코박터균이 위염과 궤양을 일으킨다면 그것을 없앰으로써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험대상으로 자신을 선택한 마샬은 헬리코박터균이 가득 찬 컵을 꿀꺽 마셨다. 그로부터 1주일 뒤 마침내 구토가 시작되고 통증을 느낀 그는 즉시 항생제를 먹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마샬은 자신이 갖고 있던 여러 종류의 항생제를 한꺼번에 먹고서야 헬리코박터균이 제거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워런 박사와 마샬 박사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첨단 이론이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평이한 기술, 즉 내시경 탐색과 염색법, 세균배양법 등으로 이룬 성과다. 위대한 발견은 복잡한 지식이나 첨단이론보다 사고를 뒤집은 새로운 발상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례다.

계명대학교 의과대학의 도서관 앞에는 히포크라테스 흉상과 빈 좌대가 있다. 장래에 노벨의학상을 받을 사람을 위한 자리인데, 기약이 없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갈 기회가 있어서 히브리대학을 방문했는데, 대학에 들어섰을 때 처음 맞는 장면이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 9명의 모습이었다. 전체 노벨 수상자의 30%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들의 교육방법에 관심을 갖게 됐고, 토라 교육을 비롯한 철저한 토론문화가 바탕에 있음을 알았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다섯 가지를 소개했다. 활발한 토론이 어려운 경직된 연구실 분위기, 기업에 의존하는 응용학문 중심의 연구개발(R&D) 투자, 시류에 편승하는 주먹구구식 투자, 인재 해외 유출, 정부 R&D 투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논문 수 등이었다. 당시엔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일 정도로 엄청난 자금을 과학기술에 쏟아붓고 있었지만 ‘노벨상은 돈만으로 안 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진료실에서 만났던 그 초등학생처럼 마음껏 질문하고 상상하고 자신이 흥미있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들을 과감히 벗어날 수 있다면 노벨상은 멀어 보이지 않는다.

김준식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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