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불구불한 도로를 천천히 감아 돈다. 여기까지가 경계라는 듯 포장도로가 끝나고 숲이 나온다. 자동차 바퀴가 숲에다 철길처럼 쌍가르마를 그려놓았다. 가르마를 따라 능선을 오르니 차도 몸도 덜컹덜컹 흔들린다.

나지막한 구릉을 지나 산 중턱에 집 몇 채가 띄엄띄엄 놓였다. 카메라 줌을 당기듯 한 걸음 두 걸음 다가간다. 솔숲이 둘러싼 공간 푸른 잔디밭 한가운데 집이 앉아있다. 죽은 사람을 태워준 집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내 집에 든 것처럼 선뜻 안기지 못하겠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가 본다.

백 년이 넘은 이 상엿집은 본래 영천시 화북면 자천마을에 있었다. 그런데 장례문화가 바뀌면서 오래도록 방치되다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우리의 얼과 혼을 소중히 여긴 분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2009년 3월에 이곳 하양 무학산으로 원형 그대로 옮겨왔다. 정면 3칸의 누각형으로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이 건물은 기와를 얹은 맞배지붕, 목 부재를 사용한 판벽과 우물마루로 지어졌다.

상엿집 안에는 상여 몇 채가 있고 아래편 창고에 십여 채가 보관되어 있다. 지역마다 모양새가 다른 전통 상여에는 오랜 세월이 고스란히 묻었다. 수많은 망자를 실어 보낸 허전함인 듯, 휘장은 구멍이 숭숭 뚫린 채 삭았고 목판도 백골처럼 허옇게 바랬다. 유소를 늘어뜨린 봉황이며 용수판 도깨비의 눈빛도 희미해졌다.

상여를 가만히 바라보니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목판에 태극문양과 무궁화와 학이 그려졌고 사면 모서리엔 봉황이 날아갈 듯 앉았다. 상여 꼭대기에 청룡과 황룡을 교차시킨 일자형 용마루가 놓였다. 그 위에 파란 도포를 입은 저승사자와 의관을 갖춘 양반, 나인이 앞을 바라보고 나란히 섰다. 반원 용수판에는 도깨비 목인이 눈을 부라린다. 용머리, 닭대가리, 귀면, 각종 꼭두, 남은 자의 바람을 대신하는 장식물이다.

상여의 장식은 의미와 역할이 정해져 있다. 망자를 위하여 시종이 따르고 재인이 재주를 부리고 악공이 가락을 연주한다. 용은 망자를 저승으로 안내하고 꼭두를 실어 나른다. 불꽃 같은 새 봉황은 어두운 길을 밝힌다. 도깨비는 잡귀를 쫓고 저승사자는 저승길을 안내하고 삼천 년을 산다는 동방삭은 악귀로부터 망자를 지킨다. 여러 사람과 동물이 망자를 에워싸니, 마지막 길에 외로움이나 잡귀가 끼어들 틈이 없을 듯하다.

아버지를 보낼 때, 집 마당이 며칠 들썩거렸다. 멀리 사는 일가붙이며 마을 사람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정짓간 앞에는 아낙네가 음식을 만들고 마당 구석에는 남정네가 술자리를 열었다. 세속의 감정이 있든 없든 어떻게 살았든, 다들 슬픔에 빠진 우리 식구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아버지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삶의 구체성은 경쟁이지만, 죽음에서만큼은 계급이나 신분을 뛰어넘어 모두가 동등해지는 시간이었다.

아침, 한바탕 울음바다가 출렁거린 뒤 꽃상여가 집을 나섰다. 상여는 생전의 발자취를 남긴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상여가 큰 길가로 빠져나가자 엄마의 곡소리와 언니 오빠들의 울음이 커졌다. 나는 언니 오빠들의 울음소리가 슬퍼 울었다. 구슬픈 만가에 맞춰 울리는, 맑고도 처량한 요령 소리도 자꾸만 나를 울렸다. 땡그랑! 땡그랑!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이제 가면 못 오는 길을.

에헤 에헤~ 에헤에야. 에헤 에헤~ 에헤에야.

친구 분네 잘 계시오 자식들도 잘 살거라.

망자가 남은 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남은 자들이 망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선소리꾼이 대신했다. 소리는 떠나는 이와 남은 자들의 애환을 최대한 끌어내어 발산하게 했다. 이승에서 망자와 함께 걷는 길, 상여는 무슨 미련이 많은지 가다가 서기를 반복하고 다리를 건널 때는 한동안 망설였다. 남은 자는 애착을 못 버려 상여를 자꾸 붙잡았다.

장지 옆에 상여를 내렸다. 산역꾼 몇 명이 미리 땅을 파 두었다. 상여에서 내린 관이 반듯하게 다듬은 구덩이에 내려졌다. 취토요! 지관이 외치자 큰오빠가 삽으로 흙을 떠 관 위에 상·중·하로 세 번 나누어 뿌렸다. 이로써 아버지의 생과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땅속에 묻혔다.

연춧대를 든 달구꾼 대여섯 명이 메워진 광중 위로 둥글게 올라섰다. 선소리꾼의 소리에 후렴을 넣으며 일렁일렁 빙글빙글 돌면서 흙을 다졌다. 죽은 자의 원한과 응어리를 꾹꾹 밟고 산 자들의 슬픔과 후회까지 꾹꾹 밟았다. 연춧대의 쿵쾅거리는 다짐 소리와 달구꾼들의 후렴 소리가 이어지면서 울음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살아 있는 존재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는 죽음. 삶의 기승전결을 끝내고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관문. 그 이별 의식을 통해 죽음도 언젠가는 내 일이 되리라는 걸 실감한다. 사람은 서로 고단한 삶을 위무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와 의미도 되새긴다. 우리네의 따뜻한 심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전통장례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긴 미덕이 엿보인다.

요즘에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의식을 치른다. 망자에게 위로가 될 만큼의 곡소리도 들려야 하는데, 남은 자가 살아가려면 슬픔을 털어내는 눈물이 필요한데, 절 두 번에 조의금이 전부다.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슬픔도 함께 나누는 의식이 거의 사라진 지금, 슬픔도 죽음도 가슴에 닿지 못하고 금방 흩어져 버리는 것이 마냥 아쉽다.

잔디밭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다. 저 멀리 내가 살아가는 차안(此岸)이 펼쳐졌다. 곧은 길, 구불구불한 길, 덜컹거리는 길, 샛길, 내리막길, 오르막길, 가시밭길. 세상에는 길들이 갈래갈래 뻗어 있고, 나도 수많은 길을 걸었다. 지천명이 넘도록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가슴 아픈 길도 많았다.

옛사람들은 마지막 길에는 편안히 누워 가시라며 꽃상여를 태워주었다. 문득 나도 꽃상여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뭇 인연들의 따뜻한 전송을 받으면 다음 세상으로 떠나는 길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아서다. 눈앞에 꽃상여가 아른거린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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