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서상 ‘녹유귀면와’

발행일 2021-10-17 17: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도깨비 영감님이 납시었다. 관을 쓴 듯 불쑥 솟은 두 뿔, 선악을 꿰뚫어볼 듯 부릅뜬 두 눈, 쩍 벌어진 입, 펑퍼짐하고 주름진 코, 뻥 뚫린 콧구멍은 로댕의 지옥문에 나오는 오만과 탐욕의 동굴처럼 괴괴하기조차 하다. 누구든 마왕 같은 그의 앞에 서면 진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경주 사천왕사지에서 출토된 녹유귀면와가 서울 나들이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덕수궁 현대미술관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내려앉은 덕수궁 노거수 그늘에는 매미들이 궁이 떠나갈 듯 사이렌 소리와 나팔을 불어대며 도깨비 어른의 입궁을 격렬히 환영하고 있다.

언젠가 방송에서 녹유귀면와를 소개한 적이 있지만,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천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하고 얼굴빛이 살아있다. 사실적이면서 역동적이다. 화난 듯 웃는 듯 큰 입안으로 드러난 날카로운 송곳니는 거역할 수 없는 복종의 기운까지 느껴진다. 널름거리는 혀는 금방이라도 허튼 내 마음을 간파하고 크게 질책할 것만 같다.

녹유귀면와는 진흙으로 도깨비 얼굴을 소조하고, 표면에 녹유를 발라 만들었는데 주로 궁궐이나 사찰 또는 크고 높은 기와집의 추녀마루에 악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세웠다고 한다.

바람이 들어오는 대문은 쉴 새 없이 드나드는 식솔들을 반가이 맞이하는 구실도 하지만, 때로는 낯선 사람과 부정한 소식을 거르는 빗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살다 보면 바람이 드센 날도 있듯이 아버지의 어깨처럼 믿음직한 대문도 어쩔 수 없이 무너질 때가 있었을 것이다. 역병도 검은 그림자로 담장을 기웃거렸을 것이고, 국운을 위태롭게 하는 침략자의 무리도 호시탐탐 대문을 넘봤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도깨비기와는 대문이 거르지 못하고 아버지가 막지 못한 사악한 기운들을 퇴치하는 최후의 수호신으로서 그 소임을 다했을 터이다.

한 가닥 도깨비 바람이 스쳐 지나간 탓일까, 소슬한 기운으로 석조전 앞 연못가에 앉아 마음을 추스른다. 푸른 하늘 아래 세상이 눈부시게 맑다. 덕수궁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역동적인 현재와 고색 찬연한 옛것이 비대칭으로 공존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물결처럼 흐르고 있다. 앞 강물 뒤 강물이 따라 흐르듯,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현재를 잇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옛 문명이 오늘을 지탱하는 돌담이 되듯이 과거는 현재를 만든 뿌리와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 심장이 뛰는 나와 현대미술 어제와 오늘의 특별전에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으로 초대된 무생물체인 녹색귀면와의 만남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당대의 최고 장인 양지가 귀면와라는 불세출의 작품을 낳지 않았더라면 어찌 천년의 세월을 넘어 나와의 조우가 있었겠는가.

녹유귀면와를 만나니 불현듯 귀면와가 출토되었다는 경주 사천왕사지를 둘러보고 싶어 경주로 향한다. 푸른 낙동강이 빛을 싣고 유장히 흐른다. 문득 어렸을 적 살았던 고향마을이 강물 위로 가물거린다.

강가의 고향 마을은 여름이 오면 연례행사처럼 홍수가 났다. 사람들은 화마가 지나간 자리는 새싹이 돋지만, 홍수가 지나간 자리는 남는 게 없다면서, 물이 빠질 기미도 없는 바다처럼 변한 들녘을 허탈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이력이 났다는 듯 마당까지 차오른 강물에도 무덤덤하게, 오직 배를 타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는 뱃사공에게 서울 간 아들의 편지 소식만을 물었다. 그 무렵 어머니는 식구들의 밥상을 차리시는지 부엌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었고,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 체, 모르는 체 할아버지는 도깨비 탈을 쓰고 춤을 추셨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저 강물을 하루속히 퇴치해야 한다는 주문이라도 거는 듯 덩실덩실 춤에 매달렸다. 할아버지는 오광대놀음이 있는 날엔 어김없이 면 소재지에 나가 한바탕 놀이를 하다 밤 이슥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그날도 밤늦게 낟가리가 쌓여있는 들판을 지나오다 도깨비를 만나 밤새도록 씨름을 하였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사위어지지 않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내 가슴에 남아있다.

도깨비는 결국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함께 살아온 유익한 존재였다. 귀신과 달리 사람을 해하지도 않고 우리 곁을 기웃거리며 필요하면 참견하고, 싫어하면 물러갈 줄 아는 넉살 좋고 유쾌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윤리와 해학과 지혜를 가르쳐 주는 윗동네 사는 외로운 어르신이기도 하다.

낭산 자락에 있는 사적 제8호인 사천왕사지 앞에 섰다. 679년 신라 문무대왕 19년에 불력으로 당의 야욕을 막아내고자 세운 사천왕사는 또 하나의 신화를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다행히 발아래 보석 같은 유물들을 고이 품어 이 시대에 전했다. 그 시절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떠받친 귀한 유산들. 그중 신라 최고의 조각가이자 미켈란젤로로 비견되는 양지가 만든 녹유귀면와, 녹유신장상과 연꽃무늬 수막새는 오묘한 예술성을 뛰어넘어 거룩하기조차 한다.

단지 흙으로 빚고 정성과 혼을 불어넣어 만든 양지의 작품. 천년을 죽지 않고 기어이 피어나는 연꽃처럼 우리 앞에 다시 태어났다. 조각조각 깨진 파편들을 퍼즐 맞추듯 꿰맞추어 부활의 생명을 부여받았으니, 그것이 내가 박물관을 찾아가고, 유물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이유이다.

낭산 자락에 해가 설핏 기운다.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만남을 위한 또 한 번의 준비 시간일 따름이다. 노을빛 아래 신화를 품은 도심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봉덕사의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온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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