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안에 꽃을 심다/백순금

발행일 2021-09-16 09:24:12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어물쩍 방치하여 저당 잡힌 입속을/곡괭이로 파헤치고 망치질 서슴없다/“오늘은 뿌리 박습니다”/꽃 세 송이 심는다//헐거운 땅 골라서 탱탱하게 조인 나사/실한 뿌리 자라도록 간격을 배치하며/시든 꽃 뿌리를 뽑고/야무진 치아 심었다//어렵사리 산을 넘어 돌아온 비탈길에/쇳소리 가득 담은 비대칭 실루엣/정방향 무게중심이/한쪽으로 기운다

「시조미학」(2020. 가을호)

백순금 시인은 199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세상의 모든 것은 배꼽이 있다’가 있다. 황치복은 작품해설에서 한 실존적 개인의 고독한 모색 혹은 부활의 노래라고 하면서 ‘세상의 모든 것은 배꼽이 있다’에 대해 시인의 종착점인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봤다. 즉 배꼽은 죽음의 흔적이자 삶의 표식으로서 모든 생명체에 깃들어 있는 것으로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입안에 꽃을 심다’는 치과 진료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이가 약해지기 마련이다.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 임플란트 시술로 새 이를 박는다. 화자는 어물쩍 방치해 저당 잡힌 입속을 곡괭이로 파헤치고 망치질 서슴없음을 얘기하면서 병원에서 간호사가 오늘은 뿌리를 박습니다, 라고 말할 때 꽃 세 송이 심는다, 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이왕이면 이렇게 생각이 긍정적이면 좋은 일이다. 마음이 윤택해지고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헐거운 땅 골라서 탱탱하게 조인 나사를 실한 뿌리 자라도록 간격을 배치하며 시든 꽃 뿌리를 뽑고 야무진 치아를 심는다. 앞으로 남은 날들 동안 충분히 잘 버티어 줄 버팀목인 셈이다. 그리고 화자는 어렵사리 산을 넘어 돌아온 비탈길에 쇳소리 가득 담은 비대칭 실루엣을 떠올린다. 정방향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느끼며 삶에 대해 잠시 숙고한다. 이렇듯 입안에 꽃을 심는 일을 통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기대를 가진다.

그는 또 ‘뜨거운 다짐’에서 일상을 살핀다. 묵은 이파리 접고 새날 여는 아침이다, 라면서 더 넓게 더 빠르게 달려온 발걸음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가 한때는 말줄임표로 서성인 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언 땅에 봄풀 돋듯 다시 눈뜬 이 아침에 맨살의 지문 읽듯 밟고 갈 길 위에서 더 낮게 모를 깎으며 한 생을 태워가고 있다. 진솔하고도 진지한 걸음걸음이다. 또한 비울수록 채워지는 새 달력을 걸어놓고 분주한 일과표로 촘촘하게 점을 찍어 웃자란 손톱을 자르며 또 하루를 펼치고 있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은 적다. 이미 일상을 다스리는 내공을 축적해 놓았기 때문이다. 물 흐르듯 바람 불어가듯 살면 되는 것이다. 그 무슨 커다란 고민덩어리를 부둥켜안고 힘들어할 까닭이 없다. 사는 대로 사는 것이다. 시도 그렇다. 쓰는 대로 쓰는 것이다. 거기서 때로 명작이 탄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따금 뜨거운 다짐은 필요한 것이다. 얼마나 뜨겁게 사는가에 따라 인생의 승패는 좌우될 터다.

‘스마트폰, 너’에서도 화자의 일상이 잘 드러난다. 너를 사귀고는 모든 걸 까먹었다, 라면서 안과에 예약해 둔 날짜도 잊어먹고 머릿속 달달 외우던 전화번호도 까맣게 된 것을 말한다. 급하게 외출하며 네가 손에 없을 때 줄줄이 부재중 전화 단톡에 문자까지 너에게 모두 맡겨둔 내 하루가 불안하다, 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차곡차곡 저장해 둔 여백의 비밀까지 통로를 열어가며 손에 꼭 쥐는 연습을 하며 내일은 일찍 깨워줘, 라고 스마트폰에게 부탁하고 편안한 잠을 청한다. 이만큼 세상은 달라졌다. 앞으로 또 얼마나 달라질지 알 수 없다. 잘 대비하지 않으면 생존을 위협 받을 것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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