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단 20여 명 지난 11일 진흥왕릉, 법흥왕릉, 명활산성 둘레길 답사

▲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1일 진흥왕과 법흥왕의 왕릉과 명활산성을 찾아 신라 중흥기의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스토리텔링했다. 기행단이 법흥 왕릉에서서 당시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1일 진흥왕과 법흥왕의 왕릉과 명활산성을 찾아 신라 중흥기의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스토리텔링했다. 기행단이 법흥 왕릉에서서 당시 문화와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진흥왕과 법흥왕의 왕릉과 명활산성을 돌아보며 신라 중흥기의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확인했다.

대구일보의 삼국유사기행단은 매월 한 차례 삼국유사 이야기 현장을 답사하며 역사문화를 되돌아보면서 현대적 감각에 맞게 스토리텔링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육성하고 있다.

이번 달 기행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참가자를 20명으로 제한한 가운데 진행됐다.



기행단은 진흥왕과 법흥왕의 왕릉을 돌아보고, 명활산성 둘레길을 등산하면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준비 단계, 기틀을 다듬어 가는 과정, 월성을 수리하는 동안 자비왕과 소지왕이 명활산성을 궁궐로 사용했던 점 등을 중점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1일 진흥왕과 법흥왕의 왕릉과 명활산성을 찾아 신라 중흥기의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스토리텔링했다. 기행단이 진흥왕릉 앞에서 삼국통일 기반을 마련한 신라의 역사를 돌아보고 있다.
▲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1일 진흥왕과 법흥왕의 왕릉과 명활산성을 찾아 신라 중흥기의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스토리텔링했다. 기행단이 진흥왕릉 앞에서 삼국통일 기반을 마련한 신라의 역사를 돌아보고 있다.


사적 제176호와 제177호로 각각 지정된 법흥왕릉과 진흥왕릉은 월성이 위치한 중심도시에서 한참 서쪽으로 벗어난 산간 지역에 조성돼 있다. 왕들의 업적에 비하면 왕릉이 너무 작아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다.



신라 23대 법흥왕은 처음으로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신라의 역사·문화·건축 등을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한 불교를 공인했다. 또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는 등 내적으로 국가 체제를 확립했다. 법흥왕은 또 금관가야를 정복해 외적으로도 국가의 기반을 튼튼하게 했다.



진흥왕은 아버지가 법흥왕의 동생이고, 어머니는 법흥왕의 딸이다. 법흥왕이 외할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삼촌이기도 하다. 7살에 왕위에 올라 어머니가 섭정했지만 18세부터 친정 체제로 들어가 강력한 군주로 변신했다.



나라의 이름을 개국이라 칭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공격해 신라의 영토를 가장 크게 넓히며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왕이 됐다. 황룡사와 흥륜사를 지어 불교를 크게 장려하며 나라의 통치 이념을 바로 잡고, 화랑 제도를 도입해 나라의 인재를 육성하는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





▲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1일 진흥왕과 법흥왕의 왕릉과 명활산성을 찾아 신라 중흥기의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스토리텔링했다. 기행단이 명활산성 둘레길을 답사하고 있다.
▲ 대구일보가 주관해 운영하는 삼국유사기행단이 지난 11일 진흥왕과 법흥왕의 왕릉과 명활산성을 찾아 신라 중흥기의 기반이 마련되는 과정을 스토리텔링했다. 기행단이 명활산성 둘레길을 답사하고 있다.


명활산성은 사적 제47호로 지정된 역사유적지구로 경주보문관광단지 서쪽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최근 북문지가 발견돼 성벽 일부가 복원됐다.



금산 가리촌 지타촌장이 하강한 곳이라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다. 왜병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쌓아 올린 성으로 월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중요한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비왕이 월성을 수리하는 기간 동안 궁성으로 사용했던 곳이다. 또 선덕여왕 당시 상대등 비담 등이 명활성을 근거지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김유신 장군이 방어했다. 이후 명활성은 역사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김구석 경주남산연구소장은 “진흥왕은 신라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한 기반을 마련한 대단한 군주였다. 현재 지정된 진흥왕릉의 위치는 고고학계에서 아무도 믿지 않은 만큼 잘못 지정된 왕릉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명활산성은 고도가 높지 않고 보문단지와 연접해 접근성도 좋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상당한 연구 가치가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 스토리텔링과 복원 사업을 진행하기 적합한 장소”라고 강조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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