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석봉
▲ 홍석봉



아프가니스탄은 미군이 철수하자 바로 망했다. 공개 학살이 자행되고 공항은 탈출 행렬로 아비규환이 됐다. 대통령은 돈을 챙겨 외국으로 달아나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됐다. 군인은 싸울 의지도 없고 도망가기에 바빴다. 탈레반에게 그냥 나라를 넘겨주었다. 망국의 현실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종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아프간의 패망은 남의 일 같지 않아 등골이 오싹하다. 한국도 언젠가는 미군이 철수할 것이다. 북한이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고 있는 터다. 국내 일부 진보 세력은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을 상전 모시듯 하는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군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최신 무기가 아무리 많으면 뭣하나. 아프간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군은 지금 성범죄와 싸우고, 급식과 싸우며, 훈련도 않는다. 이런 당나라 군대가 적의에 불타는 북한군과 어떻게 싸우겠나. 걱정이다.

--기강 해이 군, 미군 없이 북 침략 막겠나

국보 제132호인 징비록(懲毖錄)은 유성룡(柳成龍)이 임진왜란 상황을 기록한 책이다. 국학진흥원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유성룡은 책 머리에 제대로 방비하지 못해 전 국토가 불타버린 참혹했던 임진왜란의 경험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하자는 뜻에서 책 제목을 ‘징비록’으로 정했다고 했다.

유성룡은 조선의 전쟁 준비 소홀과 그로 인해 초래한 참담한 결과를 상세히 기록했다.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 명나라의 지원병 파견 및 조선 수군의 전투 상황 등 전황을 객관적으로 기록했다. 조정의 분열, 임금과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과 불신, 무사안일로 일관한 관료와 군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왕은 백성을 팽개치고 도망가기에 급급했고, 신하들은 자신의 안위 만을 살폈다. 장수들은 싸움 한 번 제대로 못했고, 군사들은 달아나기 바빴다. 성난 백성은 급기야 경복궁을 불 질렀다.

왜란 직전인 1586년 일본 사신이 왔다. 사신은 예조판서가 베푼 잔치 자리에서 술에 취해 자리 위에 후추를 흩어 놓았다. 이에 기생들과 악공들이 다투어 줍는 소란을 보고 통역에게 “너희 나라는 망할 것이다. 기강이 허물어졌으니 망하지 않기를 어찌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당시 조선의 상황이 이 같았다.

왜군 침입 후 첫 승전보를 전한 부원수 신각은 도원수 김원명이 자신을 따라 도피하지 않았다며 명령 불복종으로 참형됐다. 나중에 신각이 전투에 이겼다는 보고를 접한 조정은 참형을 중지하려고 급히 선전관을 보냈으나 이미 집행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한산도 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도 모함을 받아 투옥됐다. 그를 추천한 유성룡도 공격받아 난처한 처지에 몰렸다.

‘징비록’은 TV 드라마로 제작돼 인기를 끈 바 있다. 징비록은 1647년 국내 첫 간행됐다. 일본에는 1695년 번역돼 널리 읽혔다. ‘에도시대’에 이미 일본 지식인들 사이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은 조선 정벌에 실패한 경험을 징비록을 통해 곱씹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한국과 일본은 대응이 너무 달랐다.

이후 일본은 조선을 병탄, 우리는 36년간 일제 치하에서 신음했다. 임진왜란의 처절한 아픔을 겪고도 병자호란, 한일합방, 6·25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했다. 조상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탓할 수밖에 없다. 징비록의 교훈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삼지 못했다.

--숱한 수모의 역사…징비록 교훈 뼈에 새겨야

깨어 있는 소수의 관리와 병졸, 백성들이 결국 나라를 지켰다. 명나라의 지원군도 역할을 했지만 임진왜란은 그들의 전쟁이 아니었다.

아프간 패망은 정부의 무능과 부패, 정치적 분열이 초래한 비극이다. 미국은 아프간에 20년간 공을 들였으나 재기 불능이라고 판단, 철수했다. 냉정한 국제사회의 단면이다. 아비규환의 카불 국제공항은 베트남 패망 후 사이공을 다시 보는 듯했다.

남의 일이 아니다.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강한 군대를 유지하도록 전력을 쏟아야 한다. 나라가 분열되고 안보가 무너지면 백약이 무효다. 수모의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할 수는 없다. 징비록의 교훈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홍석봉 논설위원



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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