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라를 위하여/ 이재무

발행일 2021-08-01 14:52:33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암말 같은 여자가 보고 싶다/브라 벗고 맨가슴 내밀어/활기차게 걷는 도발을 보여다오/걸을 때마다 샘물 솟는/젖살은 얼마나 고혹적인가/칭얼대는 아이/젖 물려 달래는 모성이여/브라 속 굴욕,/가짜 교양 남근의 시선 따위/벗어버려라, 상술에 속지 마라,/비 다녀간 여름의 야자수처럼/싱싱하고 푸른 노브라/발랄, 생동하는 거리를 위해/여인이여, 다산의 풍요/물컹, 봉긋한 자랑을 보여다오

「소월시문학상작품집」 (문학사상, 2009.5)

브라는 출렁거리거나 처지는 걸 방지하고 남성의 눈길을 끄는 패션용품으로 자리 잡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자발적인 장신구이기도 하지만 건강을 해치는 성차별적 관념을 유발하는 타율적 굴레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성징이 나타나는 시기부터 브라를 착용하는 것은 당연한 관행처럼 굳어졌다.

얇은 옷을 입는 여름철엔 유두가 비쳐지는 까닭에 노브라는 부끄럽기도 할 것이고 오해의 소지도 있을 것이다. 조금 불량 끼가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자유로운 진보적 여성과 이성을 유혹하고자 하는 여성은 일상의 일탈을 꿈꾼다. 끼 있는 여성으로 오해받을 위험성 때문에 부득불 브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다. 이는 의식 있는 지성인인 척 불순한 의도로 한층 더 과감해지는 상황과 양립한다.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본다면 브라는 제거해야 할 표적일 수 있다. 강력한 힘의 지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형식적이고 평면적이긴 하지만 다름마저 거부하고 따라 하기를 시도한다. 남성처럼 머리를 짧게 깎고 바지를 입으며 브라를 벗어버린다. 그렇게라도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의지를 보여줄 요량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정보력과 창의력이 경쟁의 요체다. 허우대나 완력은 능력의 잣대가 아니다. 여성이 빛을 발할 수 있는 환경이 성숙된 것이다. 뇌쇄적인 가슴으로 눈길을 끌고 유혹하는 세태는 한풀 꺾였다. 당당함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있는 대로, 생긴 대로 살아가는 여성이 대세다. 남성과 비교하는 시각을 떠나 타고난 몸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여성이 아름답다.

브라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맞는 것인가 틀린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의지에 의해 취사선택 돼지는 패션이고 필요의 문제다. 가슴에 대한 성적 편견을 버리고 브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맞는다. 여성의 가슴이 남성보다 더 큰 이유는 수유라는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다. 브라는 편의용품일 뿐이다.

허나 시대가 바뀌어도 본능은 살아있다. 생식이나 양육을 위한 기관 뿐 아니라 그 부분과 관련된 장신구까지 자율신경계를 자극하고 섹스 본능을 일깨운다. 가슴과 노브라라는 단어만으로 엉뚱한 상상을 하게 한다. 모성본능 가운데 도발적인 색 끼가 살짝 묻어난다. 악의로 발목을 잡을 양이면 외설이란 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분홍빛 성적 감수성은 시의 울림을 이끌어내는 장치로 맛깔스럽다. 그런 빛깔도 없는 시는 무미건조한 법조문과 진 배 없다.

시는 성희롱이나 차별이란 위험공간에 노출돼 있다. 젠더가 핫이슈인 상황에서 조금만 냄새가 나도 의심의 시선을 받는다. 눈 내리는 소리를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 표현한 시구를 여성비하나 성희롱의 시각에서 몰아붙인다면 문학이 설 땅은 없다. 숨 쉴 공간이 없다. 성숙한 풍토가 아쉽다.

오철환(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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