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 현장을 가다 (91) 혜영씨네농장

발행일 2021-07-28 09: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귀농해 자두와 사과를 재배…사회복지사 부부의 농사이야기

서울 SNS마케팅 교육 10일간 찜질방에서 숙식 해결

농부레터로 농장의 소소한 일상을 소비자와 소통

과수원을 놀이터로 삼은 아이들을 위해 제초제는 이제 그만

나무의 생리에 맞춘 자두와 사과 재배 위해 간격 넓혀

자두 과수원에 모인 혜영씨네농장 가족들. 문 대표 무릎에 앉아 있는 한결이가 첫돌이 지나고 의성으로 귀농했다.
고려말기 벌리사(伐李使)라는 특별한 관직이 있었다.

오얏나무를 베어내는 것이 일이다.

오얏이 바로 자두다.

고려는 왜 자두나무를 베어내는 관직을 만들었을까.

신라의 고승 도선국사의 예언과 고려 말기의 상황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도선국사가 ‘도선비기’에서 500년 후에는 오얏 이(李)씨의 왕조가 나타난다고 예언했다.

변방의 장수에 불과했던 이성계는 황산대첩(황산 697m, 전북 남원)을 통해 왜구를 완전 토벌하면서 고려의 핵심 정치세력으로 등장했다.

뜻을 같이하던 정도전과 무학대사도 ‘개경은 기운이 쇠했고, 한강 주변에 있는 양주에 이씨의 왕조가 들어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불안을 느낀 고려는 양주에 벌리사를 파견해 자두나무를 모조리 베어냈다.

이(李)씨의 기운을 꺾고, 고려의 명운을 연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는 망했고 조선이 건국하면서 오얏은 조선왕조의 상징이 됐다.

자두는 여름과일의 왕자로 불린다. 맛과 향, 영양이 좋기 때문이다.

의성은 전국 자두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는 자두의 고장으로 꼽힌다.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많아 자두재배의 최적지로 손색이 없다.

의성으로 귀농해 자두 6천㎡와 사과 6천600㎡를 재배해 연간 6천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강소농을 만났다.

자두재배로 농사일을 시작해 사과재배까지 농장을 확대했다.

혜영씨네농장의 문헌준(52) 대표와 아내 우혜영(44)씨의 농사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전에 수확한 자두 선별작업을 하고 있는 문헌준 대표. 그는 무게별로 자동선별을 한다. 자두는 육질이 부드러워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상하기 때문에 세심한 선별작업이 요구된다.
◆사회복지사의 I형 귀농

문 대표와 아내 혜영씨는 사회복지사다.

서울에서 10년 동안 복지시설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사명감으로 일했다.

문 대표의 일터는 서울역에 마련된 무료 진료소였다. 각종 질병과 부상 등 위험에 노출된 노숙자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했다.

진료소는 밤낮이 따로 없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모두가 절박한 상황이라 한 사람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10년간 진료소 생활을 하면서 ‘번아웃’ 상태에 빠졌다.

탈출구를 찾고 싶었고, 결국 고향인 대구를 선택했다,

대구로 왔으나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스스로는 휴식과 충전이라고 위안했지만 남의 눈에는 허송세월로 보였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어물가게 일을 도우면서 인터넷 판매를 시작했다.

예상외로 잘 팔렸다.

판매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신의 물건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매 품목을 찾다가 농산물을 떠올랐다. 귀농을 해 자신이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부부는 2015년 의성군으로 귀농을 했다.

I형 귀농(도시출신자의 비연고지 귀농)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역으로 귀농한 문 대표는 물론 첫돌이 막 지난 아이를 안고 말없이 따라 나선 아내의 용기가 대단했다.

부창부수다.

농장 이름을 ‘헤영씨네농장’으로 지은 것도 그런 아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문헌준 대표가 자동 선별작업을 마친 자두를 포장작업 전에 한 차례 더 육안으로 검사하고 있다.
◆과수원은 아이들의 놀이터

겨울에 들어서면 문 대표는 직접 채취한 은행열매와 양파, 돼지감자를 삶는다. 할미꽃뿌리는 약재상에서 구입해 5시간 이상을 삶는다.

친환경약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예방위주로 살포해 진딧물 등 해충의 발생을 막는다.

유황과 천일염, 황토, 가성소다를 이용해서 만든 유황제재는 살균제로 쓴다.

여름철에는 풀과의 전쟁을 치르지만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다.

예취기를 이용해 수시로 벤다.

이런 과정이 힘들고 효과도 떨어지지만 농약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농약을 최대한 줄이고, 친환경약제를 사용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다.

시골이라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마치면, 마땅히 할 놀이도 없고 같이 놀 또래 친구도 없다. 그렇다보니 아이들도 과수원으로 향한다.

과수원이 놀이터다.

아이들은 과수원에서 꽃을 구경하고, 흙장난을 하면서 논다.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것도 능숙하다.

개구리와 풀벌레들이 친구다.

문 대표는 아이들이 농약이 묻은 풀밭에서 놀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농약을 최소화한단다.

아직 초창기라 친환경재배 인증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친환경에 한발 더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방금 수확한 자두.
◆과수원의 주인은 나무

“귀농을 해보니 주변에 정보와 기술이 넘쳐나더라”며 “누구나 자기 기술이 최고라면서 따라하면 된다고 자랑하는데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는 버거웠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문 대표는 고민 끝에 기본에 충실하면서 나무의 생리에 최대한 맞춘 재배법을 선택했다. 가장 먼저 재식거리를 넓혔다.

이미 심겨진 나무를 간벌을 통해 간격을 넓힌 것이다.

새로 심는 사과 묘목은 처음부터 간격을 넓혔다. 재식거리를 2.5m x 4.5m로 크게 넓혔다. 성장과정에 간벌을 통해 더욱 넓힐 계획이라고 했다.

다수확과 노동력 절감을 위해서 초밀식 재배방식으로 가는 추세지만 문 대표는 반대로 방향을 잡았다.

나무가 커지면 커질수록 많은 노동력이 들어간다.

당연히 생산성도 떨어진다.

그러나 더 높이 자라서, 햇볕을 더 많이 받으려고 하는 나무의 생리를 반영해 고품질의 과일을 생산하겠다고 결심했다.

적과작업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2차에 걸쳐 적과작업을 진행하지만, 2차 적과 후에도 줄기와 잎의 세력과 과실의 숫자를 감안해 수시로 적과를 한다.

그러다 보니 가위를 들고 과수원을 살피는 것이 일과가 됐단다.

초생재배를 선택한 것도 나무와 풀, 흙이 서로 어우러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당도를 높이고 색깔을 잘 나게 하기 위한 영양제나 비대제 및 착색제 등은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생선 부산물과 다시마를 2년간 숙성시킨 아미노산 액비를 만들어서 사용한다.

모든 과정이 힘들지만 기꺼이 감수한다.

맛있는 자두와 사과를 위한 장기 투자인 셈이다. 남이 보면 역주행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응원에 힘을 얻는다.

소비자에게 배송한 1㎏ 용 상자에 포장작업을 하는 문헌준 대표
◆교육은 나의 힘

의욕적으로 추진한 귀농이었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기술도 자금도 부족했다. 농사일도 서툴렀다.

어디 하나 기댈 언덕이 없었다. 그래서 몸으로 부딪쳤다.

우선 이웃의 도움으로 자두과수원을 빌렸다.

자두 재배기술을 배우기 위해 농업기술센터와 농업기술원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이듬해 시작한 사과도 마찬가지였다.

이웃 농가를 찾아가 실기기술도 익혔다.

다음으로는 마케팅과 정보화교육에 뛰어 들었다.

재배 못지않게 판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케팅 전문기관을 통해 유료교육도 많이 받았다.

서울에서 10일 동안 SNS전문 마케팅 교육을 받을 때는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열정적인 노력 덕분에 2018년 전국 농업인정보화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혜영씨네농장TV’라는 유튜브도 운영한다.

수많은 교육을 받은 덕분에 재배기술과 판매기술도 많이 늘었다.

교육의 힘을 알기에 지금도 연간 400시간 이상의 교육을 받는다.

자두와 사과는 전량 직거래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서 판매한다. 4천여 명의 고객에게 계절별로 문자 메시지로 농장의 소식을 전한다.

배송상자에는 농장의 소식을 실은 ‘농부가 띄우는 혜영씨네농장’이란 농부레터를 동봉한다.

“대단한 마케팅 기법은 아니지만 모두가 교육을 통해 터득한 성과”라며 문 대표 부부는 확신했다.

선별작업을 마친 자두.
◆명품 고목사과와 명예의 전당

농장에는 특별한 사과나무 100주가 있다.

올해로 40년이 된 고목사과나무다.

매입 당시 주변에서 고목이니까 캐내고 새로 심으라고 권했으나 문 대표는 그대로 재배한다.

일부는 간벌을 해 나무가 마음껏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사과는 15년 전후가 최전성기로 알려졌다.

생산성을 감안해 20년 전후에 캐내고 새로 심는다.

고목사과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고 했다.

청량감이 있고 단 맛과 새콤한 맛이 잘 어울린 오묘한 맛이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다.

크고 오래된 나무에서 열리는 사과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맛이 있다면서 고목사과만을 찾는 소비자도 있다. 하지만 관리가 어렵다.

전정작업도 고목전정 전문작업팀에 맡겨야 한다.

올 겨울에도 고목전정팀을 고용해 특별전정을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고목전정 기술도 익혔다.

과수원과 주변에 꽃을 심어 자두와 사과, 꽃이 조화를 이루는 명품 꽃동산을 만들어 개방하기로 했다.

곳곳에 포토존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추억의 공간도 제공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인터넷 쇼핑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 판매의 달인이 되는 꿈도 꾸고 있단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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