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별 과제를 앞두고 발표자를 정할 때 자발적으로 희망자가 있다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누구도 손들지 않는 긴장감이 흐르는 그 순간. 우리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공기가 팽팽하다’라고. 이렇듯 우리는 예전부터 자연물인 공기를 감정이나 느낌과 연관 지어 표현하고 있다.
단지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2011년 네덜란드에서 500명을 대상으로 날씨에 따른 기분의 변화를 연구했다. 그 결과 2명 중 1명이 날씨에 따라 기분이 달라진다고 응답했다. 맑은 날씨에 기분이 좋아지지만, 햇볕이 따가운 날씨에는 불쾌감을 느끼고, 비가 오는 날 우울감을 느꼈다.
또한 스위스는 국민의 30%가 편두통을 앓고 있는데, 그 원인으로 날씨를 꼽기도 한다. 스위스의 남쪽 지방에는 봄철에 공기가 알프스산맥을 넘어오면서 ‘푄(Fohn) 현상’이라고 부르는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이 분다. 이 푄현상으로 기온변화가 크게 나타나 인체는 급격한 기온변화에 적응하느라 늘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 ‘높새바람’이 그것이다. 높새바람은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영서지방에 주로 부는 특징적인 바람을 지칭하는 우리말이다. 동해에서 불어 들어오는 습한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고온건조해져 같은 위도에 있는 도시라도 영동보다 영서지방에서 더 높은 기온이 나타난다.
오늘도 우리나라는 폭염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권에서 대체로 맑은 날씨가 나타나면서 일사가 더해지고, 제6호 태풍 ‘인파’가 대만 동쪽 해상에 위치해 우리나라에는 남동풍이 불어와 낮기온이 35℃를 웃도는 매우 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서쪽 지역으로 열기가 더 축적되는데 특보현황을 봐도 수도권을 포함한 서쪽 지역은 폭염경보, 동쪽은 주로 폭염주의보가 발효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폭염은 열사병·일사병과 같은 질병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범죄 발생을 높이기도 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폭동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날씨와 범죄의 관계가 활발히 연구됐는데, 기온과 습도가 높을수록 불쾌지수가 높아져 범죄충동을 더 쉽게 느낀다고 분석됐다. 또한 더위를 피해 야외활동이 많아지면서 범죄자와 접촉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한편 집이 비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 주거침입 범죄가 증가했다.
요즘은 더울수록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 생활을 주로 하기 때문에 강력범죄 노출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 아동학대는 더 증가한다고 한다. 형사정책연구 ‘날씨와 시간, 그리고 가정폭력’에 따르면 상대습도가 1% 증가할 때 가정폭력 발생은 0.7% 증가하고 다음 날 가정폭력 발생 가능성이 0.3% 증가했다. 높은 습도가 부정적 감정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이다.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은 정서가 건강한 사람이라고 한다. 덥고 습한 것을 제대로 느끼는 것은 오히려 건강함의 증거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불쾌함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적절한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 올여름, 짜증이 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이웃 간에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해서 무더위를 잘 이겨나갔으면 한다.
박광석 기상청장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