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이건희 미술관 후보지 결정 배경을 들어보면 정부도 처음부터 지방의 지금과 같은 반발을 의식해 고심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국 어디로나 잘 뻗어있는 충분한 도로망과 교통수단 등을 강조하고, 또 지방과 서울의 입지 조건 차이점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후보지 인근에 있음을 거론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입지 조건을 들면서 정부는 이건희 미술관이 서울에 있어야 연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역으로 이건희 미술관이 지방에 건립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지금 전국이 촘촘하게 고속도로, 철도가 놓여 있으며, KTX 등 고속화된 교통수단은 전국 어디서든지 2~3시간이면 원하는 곳으로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지리적 조건은 전국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얘기다.

또 전문 인력과 연관 분야와의 시너지 효과가 클 거란 설명은 미리 결과를 정해놓고 여기에 짜 맞춘 답변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령 기업을 창업한다고 해 보자. 어떤 방식으로 창업하는 게 가장 빨리 자리를 잡게 하는 방법일까. 당연히 대기업에서 기업을 만드는 게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일 것이다. 자금력도, 기술력도, 네트워크도 안 갖춰진 상태에서,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창업은 그만큼 위험 부담이 높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정부가 대기업만 육성하고 지원하는 게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산업 육성도,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포함해서 역시 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이 전문 인력이나 시설 등 문화인프라 측면에서 지방보다 훨씬 잘 갖춰져 있다고 해서 미술관 건립의 최적지라고 한다면 지방에는 언제, 어떻게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뭐든 들어올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이라면 지방은 영영 소외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방에서 이건희 미술관의 서울 건립을 반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국토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지방분권을 위해서도 정부가 앞장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방을 배려하는 것은 특혜가 아닐뿐더러 국가가 실리와 명분을 다 챙길 수 있는 정책 판단이란 주장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현재 국립미술관 4곳 중 3곳이 수도권에 있고, 최근 10년간 건립된 미술관 21곳만 보더라도 8곳(38%)이 수도권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만큼 서울, 수도권에만 문화시설이 집중되고 있다.

또 지방의 문화 향유 욕구도 이건희 미술관 건립지 결정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할 중요한 요소다. 대구미술관에 따르면 6월29일부터 대구미술관에서 공개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에는 2주 만에 관람객 1만여 명이 찾았다고 한다. 코로나 사태로 하루 관람 인원을 1천500명으로 제한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역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란 설명이다.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 정부가 건립할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후보지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와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송현동 부지 2곳이 결정됐다. 황희 문체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본방향 발표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 정부가 건립할 이른바 '이건희 미술관' 후보지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와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송현동 부지 2곳이 결정됐다. 황희 문체부 장관(오른쪽 두번째)이 지난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본방향 발표회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박준우 기자 pj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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