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연가」 (창작과비평사, 1981)
언어는 그 민족의 혼을 담은 그릇이다. 한민족의 혼을 담은 그릇은 한글이다. 일제식민지하에서 한글이 수난을 당한 건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1935년생인 시인은 일제 때 국민학교에 다녔다. 그런데도 소학교라 한 것은 해방 후까지 그 명칭을 사용해온 데 대한 반감이거나 일제와 해방 후를 갈라 놓고 싶은 의도일 것이다.
일제치하에서 조선인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일본어가 국어이고 일본말이 공식적인 나랏말이었다. 국어시간엔 일본어를 가르쳤다. 한글과 한국말은 돌봐 줄 부모 없이 떠도는 고아 신세였다. 무능한 왕과 썩어빠진 지배층 탓에 위대한 한글이 생존마저 위태로운 박해를 당했다. 우리 민족도 부당한 차별과 갖은 멸시를 받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분루를 삼킨다. 지금 분개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나라를 되찾은 덕분일지 모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할 말은 없다.
작금의 상황은 한술 더 뜬다. 비록 강압은 없지만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국어보다 영어를 더 열심히 한다. 영어는 출세의 지름길이다. 국어선생은 찬밥신세이고 영어선생은 귀하신 몸이다. 사람들이 기거하는 아파트부터 사소한 가게의 상호까지 온통 영어 천지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글로벌사회가 영어세상을 더 가속화시킨 터다. 영어가 사실상 국어다.
국어시간에 일본어를 배우면서 눈물을 흘렸던 시인이 해방 후 국어선생이 됐다. 한글이 국어의 지위를 명목상 되찾긴 했지만 이젠 미국의 문화식민지 신세가 됐다. 나오느니 한숨이고 흐르느니 눈물이다. 힘없는 나라에 태어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까, 독을 품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할까. 딜레마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