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봄빛/ 김양수

발행일 2021-06-17 14:37: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또 다시/예서제서/새록새록 보이는 빛//가만히/손 뻗으면/잎잎마다 만져지는 빛//살살살/계곡을 적시며/너에게도 들리는 빛//화들짝 뛰어나와 산을 오른다./파랗게 새빨갛게 꽃불로 타오른다./세상이 꿈빛에 취해 찰방찰방 눕는다.

「시조미학」(2021, 여름호)

김양수 시인은 강원도 횡성 출생으로 1994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생명’과 동화집 ‘생각하는 배나무’, ‘개구리가 된 아이들’ 등이 있다.

‘또 봄빛’은 동심을 담은 두 수의 시조다. 이미 봄은 가고 여름철로 들어섰지만 다정다감한 정서가 눈길을 끌어서 소개한다. 특별한 이미지의 구현이 보이지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출하고 있다. 또 다시 예서제서 새록새록 보이는 빛, 이라는 대목에서 소생하는 생명의 기운을 엿본다. 새록새록, 이라는 흉내 내는 말은 잠잔다, 라는 말과 결합되면 가장 어울리는 말인데 빛하고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예서제서, 라는 말도 무척이나 정겹다. 가만히 손 뻗으면 잎잎마다 만져지는 빛에서 생명의 신비가 느껴지는 점도 좋다. 또 빛은, 봄빛은 다시금 살살살 계곡을 적시며 너에게도 들린다고 속삭인다. 예전에 어떤 시인이 봄이면 꽃 피는 소리 두 귀는 듣는단다, 겨울날 눈 내리는 소리 두 귀는 듣는단다, 친구야 눈빛만 봐도 네 마음의 소리 들린단다, 라고 노래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 빛이 나에게만 들리는 것이 아니고 너에게도 들린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시각의 청각화로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화자는 화들짝 뛰어나와 산을 오르게 된 것이다. 파랗게 새빨갛게 꽃불로 타오르는 산을 바라보면서 세상이 꿈빛에 취해 찰방찰방 눕는 장면과 마주한다. 담백한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순수한 동심이 맑게 수 놓여서 행복감을 안겨준다. 시를 통해 마음의 정화를 느낀다.

그가 쓴 ‘매미’라는 동시조가 2000년 7차 교육과정 1-2 읽기 교과서에 수록된 적이 있다. 이제 머잖아 매미가 찾아올 것이다. 아래에 옮겨보겠다.

숨죽여 살금살금/나무에 다가가서//한 손을 쭈욱 뻗어/잽싸게 덮쳤는데//손 안에 남아 있는 건/매암매암 울음뿐.

동시나 동시조는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기발한 것도 이따금 필요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의 정서나 생활과 거리가 멀면 주독자 층인 아이들이 외면하기 십상이다. ‘매미’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실감나게 잘 그리고 있다. 매미를 잡으려고 숨죽여 살금살금 나무에게로 다가가서 한 손을 쭈욱 뻗어 잽싸게 덮쳤는데, 매미는 끝내 잡히지 않았다. 아이들 눈에는 여름 손님인 매미는 여전히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손 안에 꼭 있어야할 매미는 온데간데없고 남아 있는 것은 매암매암 울음뿐이라는 표현이 생생하다. 전체적으로 군더더기라고는 전혀 없고 긴장된 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동감 있게 그리고 있어서 오랜만에 다시 찾아 읽어보아도 좋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우리 속에는 아이가 깃들어 있어서 이따금 동심어린 발언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이 들수록 마음이 여려져서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시조보다 좋은 동시조가 더욱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조를 쓰는 이라면 누구나 동시조를 쓸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동시조 창작에 힘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좋은 동시조가 체계적으로 많이 실려서 시조교육의 요긴한 학습 자료가 됐으면 좋겠다. 시조만이 가지고 있는 흥청거리기도 하고 넘실거리기도 하는 고유의 가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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