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화 신도청권 취재팀장
▲ 문정화 신도청권 취재팀장


1999년 ‘일본국제현대미술제(NICAF)’ 취재차 동경에 간 적 있다. 1992년 출범한 니카프는 당시 세계의 미술을 한 곳에 모은 아시아 유일의 최대 현대미술제전이었다.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맥향화랑이 ‘오늘의 한국 판화’란 주제로 참가했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국내현대미술 1세대인 물방울 작가 김창렬, 이우환, 김봉태, 김형대, 이만익, 김상구, 장영숙, 정환선의 판화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경북 청도에서 작업중이던 이목을(당시 37세)은 그해 한국화랑미술제 초대작가로 ‘조선의 멋’이란 부제로 참가했다. 대구 현풍에서 작업중이던 김용수(당시 37세· 2001년 작고)는 니카프 ‘우수작가 9인 특별전'에 초대됐다.

그러나 첫 해외취재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니카프가 아니었다. 짬을 내 찾은 우에노공원내 한 미술관 관람이었다. 1959년 개관한 국립서양미술관〈가와사키조선소-현 가와사키 중공업-의 초대 사장을 지낸 실업가 마츠카타(1866~1950) 컬렉션의 375점이 기반〉으로 기억된다. 학창시절 책에서나 본 유명 서양 화가의 작품들. 관람 인파 속에는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네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일상에서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22년 전 기억을 소환한 것은 삼성가(家)의 미술품 기증 소식이다. ‘이건희 컬렉션’이라 불리는 기증품에 대한 가치 등을 언급하기에는 실력이 서투르다. 기쁜 것은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의 작품을 대구가 갖게 된 것이다. 작고 50주기를 한해 앞둔 1999년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할 당시 대구는 그의 유작을 갖지 못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명덕초등학교에 걸렸던 유화 ‘사과나무’를 되돌려받기까지 수채화 1점을 가진 것이 고작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럴듯 했는지 모르지만 속빈 강정이었던 것이다.

나쁜 소식도 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기증품을 위한 미술관 건립지를 일찌감치 서울·수도권으로 못박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다. 기증자 정신과 접근성 확보, 유치 경쟁 과열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기증자 정신은 몰라도 나머지는 지역균형발전을 국정의 핵심철학으로 삼는 정부의 한 책임자가 할 말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 즉 접근성이 꼭 서울, 수도권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난 수십년간 많은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갔다면 앞으로는 그 삶의 여유를 지방과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나절 생활권이 된 지도 오래다. 장관이라면 인천공항에 내린 외국인 관람객들을 어떻게 하면 지방에까지 오게 할까를 고민해야 마땅하다.

경쟁 과열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정부는 각종 사업을 지자체의 주도적 역량을 키운다는 이름아래 공모하고 있다. 그 경쟁은 치열하지 않은 줄 아나. 치열한 경쟁을 준비하는 그 과정에서 지자체의 역량이 커지고 지역발전을 이끌 수 있기에 기꺼이 이를 감내하는 것이다. 왜 ‘이건희 미술관 건립지’ 선정을 이런 경쟁에서 제외시키려 하나.

분권시대 지방이 문화 주도력을 갖도록 길을 터 주어야 한다. 적어도 ‘삼성’과 ‘이병철’, ‘이건희’와 역사적, 인문학적 연관이 있는 지자체에게는 반드시 경쟁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게 현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이다.

대구는 삼성의 출발인 ‘삼성상회’가 있었고 ‘이건희’가 태어났고 그렇기에 프로야구 삼성의 홈구장이 있는 곳이다. 교통 요충지로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올 수 있다. 가까이는 천년고도 경주,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지향하는 안동과 함께 세계문화유산도 있다. 이런 대구를 두고 서둘러 입지를 못박는 듯한 장관의 발언은 대구를 외면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치 ‘삼성’이라는 불편하고도 뜨거운 감자를 어서 여론에서 치워버리려는 느낌마저 든다.

서울·수도권에는 이미 삼성가의 미술 인프라(호암박물관, 리움미술관 등)가 있다. 과정도, 결과도 공정해야 한다. 이건희 미술관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왜 이곳에 미술관이 있느냐”라고 물었을때 감동적이면서도 건립지를 결정하는 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철학을 엿볼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서울로 서울로’ 가는 시대가 돼서는 안된다.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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