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수도, 피할 수도,/뛰어넘을 수도 없는/굴포스/그곳에선 걸음을 멈춰야 한다//옷깃에 촉촉이 내려앉은/살아낸 시간들//저기,/떨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한 치의 머뭇거림 절벽 위엔 없는데//왜 이리 부끄러운가/주저했던 그 시간이//다가올 시간이 노쇠할까 두려우면/굴포스를 감싼 물구름을 바라보라//추락이 만든 시간길도/황금빛으로 물든다

「다층」(2020, 여름호)

하수미 시인은 경남 마산 출생으로 2019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삶 속에서 이따금 여행이 이뤄진다. 여행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더구나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여행은 늘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여행지에서 얻은 시상은 시로 생산되기가 쉽지 않지만 ‘굴포스 앞에서’는 그것을 뛰어넘은 좋은 기행시다. Gullfoss는 황금빛 폭포라는 뜻을 가진 아이슬란드에 있는 폭포다. 폭포 앞에서 시의 화자는 감격적인 순간을 맞이하면서 그 소회를 세 수의 시조로 담고 있다. 이 시조 속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중심 뼈대와 같은 구실을 하는 시어로 시간이 주목된다. 각 수에서 한 번씩 쓰인 것으로 볼 때 화자는 굴포스라는 폭포 앞에서 제한된 시공간 속의 존재인 자아를 마음 속 깊이 보듬어 본 듯하다. 누구든지 한계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 자연의 위용을 우러러보는 중에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생각하며, 더 열정적으로 살아가야 하겠다는 다짐의 시간을 가질 만도 하다. 그래서 나아갈 수도 피할 수도 뛰어넘을 수도 없는 굴포스 그곳에서는 걸음을 멈춰야 한다, 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실로 다른 도리가 없다. 옷깃에 촉촉이 내려앉은 살아낸 시간을 살피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화자는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한 치의 머뭇거림이 절벽 위에 없는 것을 보면서 왜 이리 부끄러운가 하고 주저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이어서 다가올 시간이 노쇠할까 두려우면 굴포스를 감싼 물구름을 바라보라, 라고 강권한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은 눈길을 물구름 쪽으로 향할 것이다. 추락이 만든 시간길도 황금빛으로 물드는 것을 바라보면서 인생살이가 꼭 슬픔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자각에 이르지 않았을까. 시간의 길 위를 무한정 가고 있는 인생의 항로에서 때로 굴포스와 같은 경이적인 풍광과 맞닥뜨릴 때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기대되는 것이다. 기행시도 얼마든지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굴포스 앞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인생살이와 잘 접목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또한 뜻밖의 정경과 마주한 것을 ‘정원에서’를 통해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때를 놓친 건 게으름이 아니란 걸, 때가 오면 모든 것 걸어야만 한다고 순간에 절명을 알아차린 겨울에 핀 흰 장미 이야기다. 미적 정황 묘사가 돋보인다. 이러한 섬세한 감각은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바탕이다. 스케일이 느껴지는 ‘굴포스 앞에서’와 같은 시 세계를 추구하면서 소소한 풍경에서 비롯된 도저한 정신세계를 천착하는 일에도 더욱 힘썼으면 한다. 단시조 ‘밤벚꽃’에서 더 기다릴 수 없어 터뜨린 하얀 꽃잎에 하루 밤새 화들짝 달빛도 놀라는 것을 보면서 한 번에 무너져 내릴 버거운 환희를 떠올리는 감수성이라면 앞으로의 문학적 행보에 기대를 걸어도 좋을 일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때를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저자전전에 한동안 떠돌았던 별의 순간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시인에게 별의 순간은 언제인가? 바로 시가 찾아오는 때다. 어떻게 하든지 내 앞의 시, 내 목전에 나타난 시를 놓쳐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한시도 시에서 떠날 수 없는 ‘쓰는 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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