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시시비비/ 대구백화점과 ‘빅3’ 백화점

발행일 2021-04-08 15:01:3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준우

논설위원 겸 특집부장

77년 역사의 대구백화점 본점이 7월1일부터 영업을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백화점 측은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업종전환하는 등 회생 방안을 찾을 거라 하지만 그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진 않는다. 1944년 설립된 옛 대구상회 시절부터 지역민과 희로애락을 나눠온 대구백화점의 퇴장 소식은 그래서 시민들에게 대구경제의 현주소와 함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대구의 백화점이나 아파트 건설 시장이 외지 대기업에 넘어간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변화 대응력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대기업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지역기업의 한계에다, 온라인 중심으로 개편되는 시장환경, 그리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탈지역 정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백화점 시장은 2003년 롯데백화점을 시작으로, 2011년 현대백화점, 2016년 신세계백화점까지 소위 국내 백화점 ‘빅3’가 모두 대구에 터를 잡으면서 사실상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앞서 동아백화점이 2010년 이랜드그룹에 매각되기도 했다.

시민들과 지역경제계는 그동안 빅3의 시장 독점에 대해 우려가 컸다. 당장 지역민이 쓴 돈이 지역에 재투자되지 못하고 외지로 유출되는 것의 부작용을 걱정했다. 향토 기업의 매출이 지역경제와의 상호부조라는 기대효과가 있는데 반해 외지 업체에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라도 개입해 이들에게 지역 기여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이를 반영해 실제로 대구시는 빅3 대기업과 지역의 전통시장, 소상공인 등이 함께하는 상생발전협의회를 제도화하고, 나아가 이들의 현지 법인화도 추진했다.

그 결과 가시적 결과물도 있었다. 매년 시가 이들 대기업을 대상으로 지역기여도 평가를 하고 있다. 2019년의 경우 현대백화점이 용역과 인쇄 발주 100%, 사회 환원 기부액 26억8천만 원, 입점 175개, 공익활동 108회 등으로 베스트기업에 선정됐다. 이 정도라도 물론 적지 않은 지역 기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빅3가 지역에서 올리는 연 매출과 비교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20년 국내 67개 백화점 점포들의 잠정 매출치 분석자료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이 연 매출 7천800여억 원으로 10위권에 올랐으며, 이보다 조금 뒤처져 현대백화점 대구점이 20위권, 롯데백화점 대구점과 상인점이 각각 40위권에 올랐다. 또 이를 토대로 업계에서는 빅3의 2020년 대구 연 매출 규모가 최소 1조5천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경쟁은 당연한 일이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이 도태되는 것도 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그런데도 지역민들은 그동안 지역에 진출하는 대기업들에 끊임없이 지역과의 상생·협력을 요구해왔고, 지방정부 역시 중앙정부에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 추진을 주문했다.

결국 한 출발선에 서서 같이 출발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서로 간에 있다는 것이고, 달리 말하면 서울·수도권 중심의 국가발전 전략이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결과로 지금과 같이 지방이 어려워졌으니 이를 일정 부분 중앙정부와 수혜자들이 책임지라는 요구이기도 하다.

지역 아파트 건설 시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외지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구의 재개발·재건축 사업지 가운데 현재 시공사가 결정된 데가 69곳인데, 이 가운데 지역 건설업체가 수주한 사업지는 8곳, 11.5% 남짓이라고 한다. 또 얼마 전 끝난 2021학년도 대학 신입생 모집에서는 대구·경북권 대학들이 정원을 채우지 못해 큰 곤욕을 치렀다. 일부 대학의 경우 정원에 수백 명이 미달하는 낭패를 겪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여러 원인 분석이 있지만, 그중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에 가려는 학생, 학부모들의 성향이 영향을 끼쳤다는 대학가의 분석이나, 미래 재산가치 증식 측면에서 시장은 어쨌든 지명도 높은 유명 대형건설사를 더 선호한다는 업계의 지적은 아프게 와닿는다.

지역기업이야 당연하고, 지방정부, 지역정치권도 이런 지적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당장은 경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이지만 이게 정치, 사회 분야로까지 언제 번져갈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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