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환자

발행일 2021-04-07 16:49:18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동은 리즈성형외과 원장
이동은

리즈성형외과 원장

며칠 전 내원한 중년 여성 환자가 있다. 얼굴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인상이었는데, 마주 앉아 상담하면서 보니 조금 이상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 주름이 거의 없다. 자연스럽게 있어야 할 주름이 없고 얼굴이 통통하다. 얼굴 표정 주름 하나 없이 마치 두꺼운 석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다. 피부를 자세히 보니 땀구멍이 커져 있고, 얼굴의 톤이 번들번들하다. 그리고 피부 아래쪽에 무거운 뭔가가 들어있는데, 그것이 아래로 처져 내려오면서 눈썹, 입술, 볼살, 턱선이 처져 있다. 얼굴에 이물질이 들어간 특징적인 얼굴이다.

혹시 병원 아닌 곳에서 얼굴에 주사를 맞은 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머뭇거리던 그가 10여 년 전 아는 사람(보통 이런 경우, 항상 아는 사람의 소개로 싸게 맞았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만 특별히 싸게!!)에게서 콜라겐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자기만 구할 수 있는 일본제 수입(?) 콜라겐이라고 하면서.

보통 1년에 5~10명 가량이 그런 이유로 병원을 찾는다. 처음에는 상태가 아주 좋았다면서 만족하게 지낸다. 심지어 효과가 좋다며 친구들에게 소개도 해가면서….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가 조금씩 딱딱해지기 시작하고, 땀구멍이 커지거나 더운 날씨, 혹은 사우나에서 주사 맞은 부위가 붉게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추운 날 외출하면 빨갛게 부어오르기도 한단다.

그렇게 몇 년 더 지나면, 피부 아래쪽에 단단한 멍울(혹 같은 물체)이 생기고 이것이 아래로 처져 내려오면서 만져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피부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상태가 더 심해지면 내원하는 것이다.

이때쯤이면 얼굴에 대한 자신감, 자존감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을 잘 만나지도 않고 가족 간의 관계도 나빠지는 등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종종있다. 예전 TV에 보도된 ‘선풍기 아줌마’와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에도 이 같은 불법시술이 많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이 액체 실리콘이다. 이 액체 실리콘은 1960년대 혹은 그 이전에 함몰된 곳을 채우는 목적으로 주로 사용되다가 문제가 많아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다. 이것이 위험한 이유는 일단 주사로 우리 몸에 들어오면, 액체 상태로 몸속에서 근육, 혈관, 신경 사이에 스며들어 덩어리처럼 굳어 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몸에 들어오면 100% 제거가 불가능하다. 피부에 스며들게 되면 피부에 문제를 일으키고, 오랫동안 몸속에 노출돼 있으면 면역반응을 일으켜서 여러 가지 다른 질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이 액체 실리콘을 제거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수술로 최대한 제거할 수 있는 만큼 제거하는 것 뿐이다. 녹이는 주사나 먹는 약 같은 것은 아예 없다. 수술하다 보면 제거해야 할 덩어리 속에 신경, 혈관, 근육이 달라붙어 하나로 보이기 때문에 자칫 출혈이 심해지거나, 신경에 손상을 입혀 얼굴표정이 마비될 수도 있고, 제거 부위가 푹 꺼져서 재건 수술이 필요하기도 한다.

그래도 환자를 맡은 의사는 의무를 다 해야 하기에 최대한 제거할 수 있는 만큼 제거한다. 그래서 시간과 노력도 2배 이상 든다.

수술을 마치고 나면 상처가 아물고 피부 안쪽의 상처까지 회복되는데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이 과정이 힘이 많이 든는 것이다. 그런데 환자는 많은 비용을 들여 수술했는데 곧바로 좋아지지 않는다고 실망해 병원을 원망하기도 한다. 수술 전에 시간이 필요하고 과정이 힘들다며 여러차례 당부하며 다짐 받았던 이야기는 금새 잊어버리는 듯하다.

이제까지 여러 환자들에게 이물질 제거 수술을 해줬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콧등에 주사를 맞은 지 1개월 만에 내원한 젊은 여자의 경우였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주사 맞은 걸 알고 함께 찾아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제거수술과 재건수술을 해 거의 완전히 회복된 경우다.

그 외에는 그다지 좋은 결과는 보여주지 못하고 이물질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면역반응을 줄여주고 피부 처짐, 피부 반응을 줄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쨌든 이 같이 위험한 불법 시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올 해에는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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