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충환

교육문화체육부장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 모두는 각자가 느꼈던 고통만큼이나 엄청난 변화를 겪어야 했다.

지난해 2월18일 대구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심각할 것이라고 생각한 시민들은 거의 없었다. 그로부터 1년, 대구·경북은 코로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정통으로 지나가야만 했다.

첫 환자가 발생한지 열흘도 지나지 않아 누적확진자가 1천 명을 넘어섰고, 다시 열흘 만에 5천 명을 돌파했다. 평온하던 대구는 순식간에 공포의 도시로 변했고, 모든 것이 멈춰선 2020년 대구의 봄은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이제 열흘 후면 본격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는 소식에 불안한 가운데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게 한다.

‘이번 설에는 마카다(모두) 집에 가마이(가만히) 있어래이(있어라). 보고싶지만 우야겠노.’ 이번 설명절 연휴에 어느 지역에 내걸린 현수막 글귀다. 코로나19 재확산을 우려해 이번 설 명절은 고향을 찾지 말라는 어르신들의 정겨운 사투리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던 명절 연휴였다.

매년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 연휴를 보내곤 했는데 올해는 한사코 내려오지 말라는 어른들의 당부를 핑계 삼아 연휴 기간 내내 집에서만 지냈다. 꽉 막힌 고속도로를 타고 고향으로 오가는 기분 좋은 불편함은 겪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황금연휴였다. 명절이면 당연하게 여겨왔던 떠들썩함도 없다. 북적거림도 설레임도 느끼지 못한 싱거운 명절 연휴지만 한편으로는 평온한 휴가를 즐기다 온 기분이기도 하다.

직접 찾아서 안부를 여쭤야 하는 어른들께도 세월을 핑계 삼아 전화 한 통으로 대신하고 그냥 무료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짬 나면 읽으려고 따로 갈무리해 뒀던 책 몇 권을 꺼내 들었다. 역시 무료한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에는 독서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이 책 저 책 손에 잡히는 데로 읽어 내려갔다.

그 중에는 친분 있는 대구 문화예술계 마당발이 쓴 책도 있었다. 출간되자마자 받아둔 따끈따끈한 신간이었는데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계속 미뤄오다 이번 연휴에 들쳐보게 됐다.

대구 예술과 예술인들에 대한 기억, 예술인들이 남긴 메시지를 정리한 기록과 공연장과 전시장을 다니면서 지역 문화예술계를 탐구한 글을 엮은 책이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있어 관심 가지고 읽었다. ‘달구벌 환상곡’이라는 글이다. 달구벌 환상곡은 1999년 작곡가 임우상 선생이 합창과 독창이 포함된 3관 편성의 관현악곡으로 대구시립교향악단과 대구시립합창단이 초연한 작품이다. 대구의 작곡가가 대구를 노래한 곡이다. 작곡가 임우상 선생은 이 곡으로 그해 대한민국작곡상 최우수상을 받았다. 대구의 전체적인 인상을 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고, 그만큼 작곡가 개인적으로도 가장 애착을 가지는 곡이라고 소개하는 내용이다. 이 곡은 2019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재개관 기념 공연 때도 연주된 곡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이 곡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인터넷을 뒤져 평소 막귀로 유명한 음악 문외한이 듣는 달구벌환상곡은 어떤 음악일까 상상하면서 연주에 집중했다. 전체 러닝타임이 44분가량인 이 곡은 관악기와 타악기의 웅장한 선율로 이뤄진다.

안개 낀 들판의 조용한 분위기를 담은 1악장 해돋이를 시작으로 팔공산과 낙동강을 묘사한 2악장으로 이러진다. 산과 강, 동성로, 약령시장, 서문시장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3악장과 번영의 도시를 지나 다시 희망찬 대구의 미래를 노래하는 마지막 4악장은 약 20분 분량의 피날레인 ‘달구벌 찬가’로 끝을 맺는다.

음악을 듣는 동안 대구가 겪어온 지난 1년의 세월과 처한 여러 상황들이 스쳐간다.

대구에 첫 환자가 발생했을 때 그 당혹감. 대구의 봄과 여름을 통째로 집어 삼켜버린 참담했던 시간들. 그리고 환란 중에도 서로를 위로하면서 빠르게 위기를 극복해 가는 시민들의 모습 등.

4악장 달구벌 찬가를 듣는 동안은 대구가 가장 먼저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도시, 커다란 상처를 말끔하게 치유한 도시로 남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음악이 주는 환상일 수도 있겠지만 대구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올해 연말 코로나로부터 온전히 벗어난, 안전하고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대구를 축하하는 무대가 대구 곳곳에서 신명 나게 펼쳐지길 기대한다. 그날 공연장마다 송년 음악회 피날레 곡으로 대구의 희망을 노래하는 달구벌환상곡이 웅장하게 울려 퍼지면 어떨까?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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