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참사는 대구지하철공사의 어처구니없는 대응에다 대구시의 안일하고 무능력한 사후대처로 행정력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18일 대구시는 조해녕 시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사고수습에 본격 나섰다.

그러나 대구시 대책본부는 사고발생 이틀째부터 유가족들과 합동분향소 설치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기 시작해 중앙로역 현장훼손으로 이어지면서 유가족들로부터 대책본부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태까지 몰고 갔다.

지난달 22일 사고 현장을 찾은 실종자 가족들이 중앙로역에서 희생자의 것으로 보이는 유류품 20여점을 발견하면서 현장 훼손에 대한 반발이 커져 대책본부에 대한 불신이 일기 시작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현장 훼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항의가 빗발쳤으며, 대구시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조 시장을 따갑게 비판하고 질책하는 원색적인 글들이 쏟아지는 등 항의가 잇따랐다.

더욱이 지난달 25일 실종자 가족 2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고현장을 청소해 안심차랑기지에 쌓아 두었던 500여 자루의 잔해물에 대한 정밀감식 작업 결과 뼛조각 등 일부 유해 4점과 머리카락, 옷, 신발, 안경, 운전면허증 등 100여점의 유류품이 쏟아져 나오자 실종자 가족들은 분노했다.

여기에다 이날 대책본부 2층 소강당에 마련된 시장 대기실에서 조 시장의 선거참모 출신인 권모씨가 시장에게 전달한 ‘국면전환용’ 문건이 발견되면서 대책본부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대책본부에 대한 신뢰성이 땅에 떨어지자 실종자 가족들은 조 시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장과 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사고현장과 유류품 훼손금지 가처분신청을 대구지법에 냈다.

이 때문에 실종자 문제 해결을 위한 인정사망심사위원회 구성도 표류하게 됐고, 실종자 가족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는 중앙로역과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시민회관을 오가며 항의집회를 잇따라 여는 등 파문이 계속됐다.

이같이 대책본부와 실종자 가족간의 대립이 계속되자 조 시장은 지난 26일 시청에서 지역 유관기관단체장과의 협력 네크워크 결성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매일 갖던 실종자 가족들과의 간담회도 갖지 않았다.

실종자가족들은 더 이상 대구시 대책본부를 인정할 수 없다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직접 사태해결을 요구하겠다고 밝혔고,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고건 국무총리를 취임 첫날 대구에 내려 보냈다.

현장을 방문한 고 총리는 유가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혔고, 급기야 지난 1일 유례없는 중앙특별지원단이 대구에 파견됐다.

임성수기자 s018@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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