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가족들의 아픔 마음을 도저히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그저 돕고 싶은 마음에 나왔습니다”

1080호 전동차에 탑승한 딸 소현(20·영남대 생화학2년)양을 잃은 배은호(49·약사·경북 영천시 완산동)씨.

배씨는 지난 19일 밤부터 대구지하철화재사고 가족대기실 입구에 마련된 임시 약국에서 동료 약사들과 함께 하루 300∼400명에 달하는 실종자 가족과 유족들에게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다.

“처음 화재사고소식을 듣고 저의 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줄 알았습니다 행여 딸이 탄 전동차에 불이 붙었어도 별 탈이야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제 갓 스물인 녀석이 동작이 느려서 못나왔겠습니까 아마 피해를 입었더라도 대피과정에서 타박상 정도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무너져내리는데 그저 눈물만 났습니다 정신이 몽롱해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배씨는 사고 당일인 18일 참사현장에서 딸이 겪었을 두려움에 치를 떨면서 자신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배씨는 그저 슬픔에 주저앉자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동료 약사들이 극구 만류하고 있고 체력적으로도 견디기는 힘들지만 어쩝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딸의 죽음이 더욱 생각나 미칠 것만 같은데, 그저 다른 실종자 가족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참아내고 있습니다”

지난 22일 CC-TV를 확인한 결과 신기역에서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는 배씨는“하루 빨리 딸이 사망자로 인정받아야 할텐데 다른 실종자 가족처럼 목놓아 울 수 있는 형편도 아닙니다”라고 슬픔을 억눌렀다.

“딸아 사랑하는 나의 딸아 아빠는 눈물을 흘릴 수 없다 나의 사랑하는 딸아…”배씨는 마음속으로 자꾸 눈물이 나지만 참았다.

혹시 딸의 흔적이 중앙로역 어딘가에 남아 있지는 않을까 싶어 배씨는 의료봉사를 마치고 중앙로역으로 또다시 발길을 옮겼다.

홍동희기자 h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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