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는 별칭을 가진 원로배우 윤문식씨는 지난 2월 제6회 늘푸른 연극제에서 공연된 연극 ‘몽땅 털어 놉시다’의 출연을 앞두고 “배우는 죽을 때까지 현역이고 배우보다 광대로 불리길 원한다”며 “연극에선 광대가 최고”라고 말했다.국어사전에서는 광대를 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등을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총칭한다고 정의하고 있다.연극, 영화, 음악 등 예술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조선 명종 10년(1555)에 일어난 을묘왜변에서 왜적을 물리친 광대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그해 5월 왜선 70여 척이 해남을 함락시키고 영암으로 몰려들었다. 토벌대장으로 임명된 전주부윤 이윤경이 군사를 이끌고 성안으로 들어가 수비에 나섰다. 이때 알록달록한 색깔 옷을 입은 400~500명의 무리가 함께 들어갔다.군사가 아니라 광대들이었다.성 밖에서 구원군으로 온 남치근이 왜구를 공격했으나 사상자만 내고 물러났다. 이윤경이 왜구들이 오는 길목에 마름쇠를 뿌리고 광대들이 그 위에서 재주를 부리면서 왜구들을 유인했다. 광대들이 뾰족한 마름쇠를 피해가면서 재주를 부리는 것은 쉬웠으나 왜구들은 마름쇠를 피하지 못했다.광대들이 왜구를 유인해 향교로 들어가 놀이판을 벌이자 왜구들도 추격을 중단하고 신기한 공연에 빠져 들었다.처음 보는 공연에 정신이 빠져 있을 때 군사들이 공격해 대승을 거둔 것이다.이때 광대들로 구성된 창우대를 이끈 의병장 양달사와 광대들이 큰 전공을 세웠으나 아무런 포상도 받지 못했다.그로부터 292년이 지난 1847년에 가서야 양달사는 좌승지에 추증됐다.현재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에 ‘양달사 시묘공원’이 조성돼 있다.예나 지금이나 연극계의 처우는 열악하다.이런 환경에서도 영원한 광대로 남기를 희망하는 33년 경력의 연극배우가 있다. 그는 경력 8년의 초보 농사꾼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연극을 한다. 상주에서 우농농원을 운영하는 고대호(56) 대표다. 복숭아와 자두를 각각 6천600㎡ 재배해 6천여만 원의 조수익을 올린다. 영원한 광대를 꿈꾸는 연극배우 농사군의 농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연극은 나의 운명고 대표의 첫 직장은 철강회사였다. 그곳에서 노동운동을 했었다. 그런 그가 연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퇴근 후에 연극을 하러 간다는 동료를 따라 간 것이 첫 인연이었다. 처음부터 연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때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극단을 만들어보자는 말에 선뜻 손을 잡았다. 극단 창단 1년 만에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극단 기획자로 일했다.회사를 그만두면서 바로 생계 문제에 부딪쳤다. 극단 수입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생계 수단으로 자판기사업을 시작했으나 2년 만에 접고, 건강식품 대리점을 시작했다.다이어트식품으로 처음에는 호황을 누렸으나 트렌드의 변화로 내리막길을 걷자 5년 만에 다시 중단했다.그러나 연극과의 인연은 이어갔다. 연기의 시작도 우연이었다. 기획한 작품의 배역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망나니 1’이라는 배역을 맡았다. 이렇게 시작한 연기 경력이 33년이다. 연기를 전문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어깨 너머로 배웠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모니터링하면서 자신의 연기로 소화해 나갔다.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처음에는 연기를 그만두라는 질책도 받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연기력을 키워나갔다. 지금까지 40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경남연극제에서 연기대상을 2차례나 받았다.지난해 연기대상 수상 작품인 ‘돈과 호태’에서 호태 역을 맡았을 때는 한 달 동안 대본을 140회나 읽고, 연기 연습을 한 열정파 배우다. 현재는 극단 ‘미소’의 대표를 맡고 있다. ◆연극배우의 과수농사농사를 시작한 이유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다.창원에서 상주까지 오가면서 주말 농사를 했다.먼 거리를 오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즐거웠다. 농사일에 재미도 느꼈고 어머니를 돕는 일도 뿌듯했다. 재배도 쉽고 가격도 좋다는 말에 3천300㎡의 밭에 ‘아로니아’를 심었다.아로니아는 잘 자랐고 수확량도 많았다.금방 농사로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과잉생산과 수입으로 가격이 폭락했다.특유의 떫은맛에 찾는 사람도 줄었다.생과 판매가 어렵게 되자 가공으로 눈길을 돌렸다. 술과 주스, 분말, 청으로 만들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가공비만 날린 것이다.결국 재고로 남은 생과 700㎏은 밭에 퇴비로 뿌리고 나무는 뽑아냈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는 생각에서 대체작물 선택에 신중에 또 신중을 거듭했다.지역 특산작물을 선택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포도와 감(곶감)을 검토하다가 복숭아와 자두를 선택했다.이제는 재배 기술이 제법 늘었고 판매망도 다양하게 구축하고 있다.SNS를 통해 농장을 홍보하고 주문도 받는다. 올해는 창원지역의 소비자들이 주문한 자두를 택배로 배송하지 않고 직접 배달했다. 육질이 연한 자두가 배송과정에 상처를 입고 파손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고품질의 자두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동시에 고객에 대한 감사의 인사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연극과 농사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다”며 “4월에서 8월까지는 농사일, 9월부터 이듬해 2~3월까지는 연기를 하는 이중생활은 계속될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기본을 지키는 농사아직은 초보 농사꾼이라 재배기술도 부족하고, 유통망도 완전히 확보하지 못했다.그러나 고품질의 과일 생산을 위한 노력만은 최고다. 자신의 무기는 기본을 지키는 농사라고 한다. 작물 재배력에 따라 겨울엔 퇴비를 뿌리고, 봄에는 꽃 솎기와 적과 작업을 한다. 나무의 생육 상황에 따라 추비를 뿌리고 PLS(농약 허용기준 강화제도) 규정을 지키면서 병해충을 방제한다.시간 맞춰 풀을 베고 물을 주면서 영양제도 관주한다.즉 복숭아와 자두의 재배력을 철저히 지킨다는 의미다. 농업전문기관에서 만든 재배력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좋은 재배법이라는 것이 고 대표의 철학이다. 풀베기와 적과, 병해충 방제 등 모든 과정이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일한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기 때문에 일 년에 4~5회 풀을 벤다. 여름철에는 언제나 풀과 전쟁을 치른다. 적과 작업은 갈등의 연속이다. 너무 많이 따내도 안 되고 많이 남겨도 안 된다. 적과를 할 땐 언제나 손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든다. 사다리를 수없이 오르내리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린다. 아무리 바빠도 적과 작업은 제때에 마쳐야 한다.과일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올해는 봄 가뭄이 심해 몸도 마음도 고생을 많이 했다. 관정이 없는 산 중턱 과수원에는 500ℓ용 SS분무기로 물을 실어다 뿌렸다. 50회나 실어 날랐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주변에선 비싼 농기계가 부서지면 더 손해라고 말렸지만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고생은 했지만 스스로 위안을 얻었기에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 운반은 6월에 장마가 시작되면서 마쳤다. ◆눈으로 호강하고 나눔으로 행복한 과수원“농사일이 힘들지만 긍정의 눈으로 둘러보면 만사가 즐겁다”며 “복숭아 과수원은 세 번 꽃이 피는 무릉도원이다”고 고 대표는 말한다. 첫 꽃은 4월에 핀다. 줄기마다 빼곡하게 달린 분홍빛 복사꽃이 무릉도원을 만든다.복사꽃 아래에서 의형제의 결의를 다지는 유비와 관우, 장비를 모습을 상상한다고 한다. 배우다운 발상이다.6월에는 황금빛 꽃을 피운다. 가지마다 황금빛이 가득하다. 복숭아 열매를 감싸는 노랑봉지가 바로 황금빛 꽃이다. 올해는 4만5천 개의 꽃을 피웠다. 8월에는 빨간 꽃이 핀다. 빨갛게 익은 복숭아가 세 번째 꽃이다. 빨간 풍선을 매단 것처럼 보인다. 빨갛게 익은 복숭아를 보면서, 맛있게 먹는 고객들을 생각하면 봄부터 겪었던 숱한 어려움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고 한다.맛으로 느끼는 고객의 행복함이 전해지기 때문이다.이런 마음은 나눔으로 이어졌다. 3년 전부터 상주지역의 보육원과 지역아동센터, 창원지역 노인후원단체에 과일 나눔을 추진하고 있다. 나눔을 통해 서로가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최고의 농사꾼과 영원한 광대고 대표의 꿈은 크게 두 가지다.‘이집 과일, 정말 좋다’는 소리를 듣는 최고의 농사꾼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농사기술을 좀 더 배우고 선진 농가의 현장 기술을 익혀 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그 기술을 이웃으로 전파해 모두가 잘사는 농촌을 만든다는 계획도 세웠다.연극배우로서의 꿈도 있다. ‘극단 미소’의 모든 단원들과 함께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축제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출전하는 것이다.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 주경야독의 자세로 농사 기술을 익히고 연기 연습도 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도전을 거듭하는 고 대표의 일상이 더욱 더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영원한 광대를 꿈꾸는 연극배우 고대호와 농사꾼 고대호의 꿈이 모두 이뤄지길 기대한다. ▲농장명: 우농농원▲대 표: 고대호▲구입문의: 010-3874-7089▲블로그 : https://blog.naver.com/kodae660522▲소재지: 경북 상주시 공성면 공가실2길 110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