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에 찼던 7년 전 첫 개인전 때의 일이다. 거울에다 서명을 하고 전시장 벽에 걸었다. 실물을 그럴싸하게 비추지만 기실 좌우가 바뀐 상태로 반영하기에 끊임없이 오해를 야기하는 거울의 속성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전시장에 온 관객들이 거울을 보면서, 현실 공간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작품속 공간인 이미지의 세계에 편입되는 색다른 경험을 하기를 바랬다. 그래서 제목을 이라 붙였다. 관객 스스로가 작품의 수용자인 동시에 작품의 주인공인, 바로 ‘어떤 관객’이 되어 보라는 제작 의도를 넌지시 밝힌 셈이다.
다른 그림들과 나란히 생뚱같이 걸려있는 거울 한 점에, 사람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 웃어 넘기는 사람, (작품이 아닌 줄 알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 요리조리 살피는 사람, 거울 값 얼마냐는 사람... 다행히도, 그리고 고맙게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내 내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작품의 의미를 탐색하는 것 같아 부끄럽기조차 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미술사조 관련 책을 뒤적이다가 깜짝 놀랐다. 책에 실린 작품 사진 하나 때문이었다. 필리프 수포라는, 생전 처음 듣는 작가가 1921년에 발표한 그것은, 프레임이 달린 ‘거울’이었다! 그것도 이라는 제목이 붙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을 도리어 ‘얼간이’라고 조롱하는, 다다이스트의 기지가 돋보이는 재미난 작품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당황하고 열 받히고 맥 빠지는 일이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더니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나만의 창작물이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미 70 여 년 전에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 줄이야.
유사 작품의 존재를 몰랐었고 속이려는 의도는 더더욱 없었지만, 독창성이 예술작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오늘날 이보다 더 치명적인 일이 있을까. 게다가, 누군가가 표절이 아니냐고 우긴다면 무슨 수로 결백을 주장하리요. 워낙 내가 보잘것없는 작가이다 보니 여태껏 관심 두는 사람 하나 없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