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숙 영남대 명예교수
▲ 김정숙 영남대 명예교수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가 분분하다. 그리고 그 결과도 놀랄 만큼 들쭉날쭉하다. 어떻게 미래 4년, 또 그 이후 나라 방향까지를 좌우하게 되는 선거 앞에서 대다수 국민의 마음이 이렇게 쉽게 움직일 수 있을까 싶다. 이때쯤이면 당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나 지지층은 이미 결집한다. 그러므로 이 요동치는 여론의 숫자는 무당층의 숫자가 많다는 의미이다. 선거는 무당층을 설득시키고 끌어오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한다. 그러면 무당층은 늘 바르게 판단하는가?

1874년 달레 신부가 프랑스에서 펴낸 『한국 천주교회사』에는 한국인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조선인들은 소유권을 보호하고 도둑질을 금하는 도덕률을 거의 모르고 더구나 존중은 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터무니없는 소리이다. 그런데 한발 물러서서 돌아보면, 우리는 호박 한 개나 감자 한두 개 정도는 ‘무시’되어도 좋은 소유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묻고 싶다. 참외 서리를 한다거나 호텔에서 때수건 하나 들고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도둑질했다고 여기는지? 한국인에게는 도둑질의 범위가 큰 것에 해당하며 동시에 어느 정도는 눙치고 넘어가는 범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달레 신부는 이 작은 부분까지를 포함하여 얘기한 것이리라.

며칠 전에 지인과 대화하는 중에 딸의 입시를 돕기 위해, 서류를 조작한 정치인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지인은 딸의 졸업이 취소되었으면 됐지, 또 그 어머니가 감옥살이도 했으면 됐지, 얼마나 더 갚아야 하느냐고 했다. 지인은 각자가 저지른 죄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었고, 또 그 행위로 피해받은 사람들은 안중에 없었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짚어보기 위해 내가 아는 분야인 연구 업적으로 평가받고 사는 직업에 대해서 보겠다. 연구 업적은 연구자들 수에 따라 n분의 1로 평가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이름을 더 넣게 되면 각 연구자의 업적이 낮아지게 된다. 업적으로 월급이나 진급 혹은 취직 등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것은 상당한 양의 도둑질이다. 연구원 전체의 동의를 받고 이름을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의를 거쳐 이루어진 경우라면 정직하지 않은 ‘공동으로 저지른 범죄’가 된다. 동시에 이 점수 때문에 다른 학생이 대학 입시에 낙방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런 일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자기 직업에 대한 윤리조차 없는 일이다. 작은 것이 주어졌을 때 그것을 어기는 사람이라면 큰 것이 왔을 때는 더 큰 범위로 일을 저지를 수 있다. 이번은 ‘자식’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였고, 다음번부터는 다르리라고 기대하기에는 그의 해명이나 여론을 조성해 가는 태도가 석연치 않다.

아마 그 정치가는 몇 년 동안 온 가족이 박해를 당했다고 얘기하나 보다. 이에 동조하여 ‘특수지역’ 부모들은 다 그렇게 한다는 말들도 세간에 떠돈다. 같은 맥락으로 혹자는 현재 어느 당 대표가 재판 일에 법정 출석을 무시하는 것은 법정에 끌려가는 장면을 연출하려는 계획이라고까지 한다. 이렇게 해서 강성 지지층은 정당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더욱 뭉칠 것이고, 무당층 사람 중에서 전통적 한국식 계산법을 가진 사람은 동정으로 끌린다는 기대도 있단다. 한국인 밑바탕의 마음을 잘 짚고 있다고 할까?

투표는 사람 개인을 선호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이 앞으로 사회에 대해 실천할 행위와 능력, 미래에 대한 영향을 함께 판단하는 책임이 따르는 권리이다. 어쩌면 정치는 ‘조직’이어서 그 안에 들어가면 집단 사고에 매몰되는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내 한 표를 나라를 살리는 데 보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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