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국건<br />정치평론가 송국건TV대표
▲ 송국건
정치평론가 송국건TV대표
국회의원이 옷깃에 다는 배지는 통상 ‘금(金)배지’로 불리지만 실제론 99%를 은(銀)으로 제작하고 소량의 공업용 금으로 도금해 만든다. 의원들은 첫 등록 때 1개를 무료로 받되, 분실하거나 추가 구매 시엔 3만 5천 원을 낸다. 그러나 값싼(?) 이 배지를 달기 위해선 오랜 시간의 노력과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 “나 때는~”이 된 얘기지만 필자가 처음 국회에 출입할 무렵 ‘4당 3락’이란 말이 있었다. 40억 원을 쓰면 전국구(현 비례대표) 배지를 달고, 30억 원이면 떨어진다는 전설 같은 실화였다. 당시엔 지역구 배지를 다는 데도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지역 유권자에게 얼굴을 알리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다니는 건 당연했다. 지금은 선거자금의 투명성 강화로 천문학적 돈을 쓸 일은 없지만 그래도 꽤 많은 자금 지출이 있다. 출마할 선거구에 상주하며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건 “나 때는~”과 똑같다.
노무현재단 전 이사장 유시민은 선거판에 돈이 넘쳐나던 시절 국회의원(이해찬) 보좌관을 지냈고, 본인이 직접 배지를 달기도 했다. 변호사 조수진이 서울 강북을에서 현역 국회의원 박용진을 억지로 밀어내고 공천을 따냈을 때 했던 유시민의 말이 논란이다. “‘조변’(조수진 변호사)은 길에서 배지 주웠네.” 조수진은 한 방송에 출연해 이 말을 전해 듣고 파안대소하며 즐거워했다. 서울 강북을은 민주당 후보가 총선에서 7연승을 거둔 곳이다. 조수진이 민주당 공천권을 땄음으로 투표 하나 마나 당선된 거란 의미로 농을 주고받았으니 지역 유권자 능멸이다.
이곳에선 처음에 정봉주가 공천받았지만 ‘목발 경품’ 망언으로 낙마해, 그 자리를 조수진이 사실상 이어받았다. 그러나 조수진마저 ‘패륜적 변론’ 이력으로 물러났고, 결국 ‘이재명의 대변인’ 한민수가 후보 등록했다. 차례로 등판한 정봉주·조수진·한민수의 공통점은 서울 강북을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는 사실이다. 한민수는 전입신고 마감 시한을 놓쳐 강북을에서 투표권도 없다. 어쩌다 빈자리가 생겼고, ‘보스’가 가라니 갔다. 유사한 사례는 소위 ‘전략공천’이란 이름으로 ‘친명’을 꽂은 여러 선거구에서 있었다. 파란색을 칠한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곳에선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선거자금을 쓸 일이 없으므로 그냥 길에서 배지를 주운 거나 마찬가지다.
여당에도 배지를 길에서 줍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울의 강남 3구와 대구·경북에서 공천받은 후보가 그렇다. 물론, 대다수는 본선보다 어렵다는 예선을 거쳤다. 정치 신인 중 치열한 경선을 치러서 승리한 후보에게 배지를 줍는다고 하면 모독이다. 현역 의원 중에서 뛰어난 지역구 활동과 의정 성과 등으로 단수 추천받은 게 인정되는 후보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일단 지역구 안의 동네 이름도 모르는 ‘뜨내기’는 아니다. 반면, 공천 취소된 곳이나 소위 ‘국민 추천제’로 갑자기 공천을 딴 후보는 지역 사정을 얼마나 아는지, 배지를 달면 뭘 할 건지를 충분히 고민 안 했을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정성 들여 골목길을 누비지도, 돈을 쓰지도 않은 건 당연하다. 그런 후보도 배지를 줍는 기회는 다른 출마자들과 동등하게 가져갔다.
치열한 쟁탈전을 벌여 쟁취하지 않고 그냥 줍다시피 하면 배지 귀한 줄 모른다. 국회의원이란 자리의 무게감을 느끼는 정도, 책임 의식이 험지 출마 당선자에 비해 크게 떨어질 게 뻔하다. 조수진이 유시민의 말을 전해 듣고 박장대소하는 모습에서 느낀 건 바로 그 지점이다. 수많은 특권과 고액 연봉, 9명의 참모, 화려한 국회의원회관 입성 같은 영광과 명예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쁨만 있었을 뿐 어깨에 얹어진 짐은 느끼지도 않았고, 느낄 생각도 없어 보였다. TK 지역 국민의힘 후보 중에서도 선거 전략, 승리 이후의 고민은 아예 없이 배지 주웠다고 속으로 쾌재만 부르는 이는 없을까. ‘차은우보다 이재명’ 외모 품평의 당사자로, 서울 도봉갑에 공천받은 안귀령처럼 자기가 명함을 돌리고 있는 곳이 무슨 동(洞)인지도 모르는 후보는 과연 없을까. 유시민이 대구에 출마했을 때처럼 ‘뼈를 묻겠다’라고 했다가 잘 안되면 미련 없이 떠날 후보는 진짜 없을까.
송국건
정치평론가 송국건TV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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