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길은 꼼짝하지 않고 자동차는 기었어./엉엉 울었지./이럴 때 너라면 차창을 내리고 뭐라도 좀 바꿔보겠니?/공기나 기분 같은 거. 음악 같은 거. 당신은 베란다에서 그렇게 한다./해가 뜨겁군./나는 고속도로 한가운데 이 망할 고물자동차를 파킹하고 뚜벅뚜벅 걸어나갈 거야./뒤에서 들려오는 욕설은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음악처럼./저녁에 내가 도착한 바닷가 마을은 메뉴판 외에는 읽을거리가 없네,/내 마음엔 백 가지 생선 이름만 가득!/오로지 죽은 생선들로만! 그렇지만 내가 죽인 건 아니지./내가 죽인 건 따로 있지./저런, 이 모텔엔 빈방이 없다는군. 택시도 아닌데 합승을 청할 수도 없고. 그렇지만 내 마음엔 백 가지 모텔 이름만 한가득!/하룻밤을 위한./어떻게든 되는 일이 있고 어떻게도 안 되는 일이 있지. 어떻게든 나는 커튼을 걷으면서 아침을 맞았어./이런, 해가 중천에 떴네./내게 붙어다니는 그림자는 꼭 붙어서 가장 짧고./여행에서 우선 찾아야 할 것은 먹을 만한 식당과 잘 만한 모텔 같은 것들. 그렇다면 여행에서 꼭 필요한 문장은 몇 개나 될까?/그중에 하나는, “빈 방 있어요?” (나는 진정한 빈방을 찾아서 세 시간을 달려왔어요! 쾅 테스크를 치며)/그중에 하나는 터미널에서, 또 식당에서 사용했다. 또 그중에 하나는 지도가 없는 곳에서/또 그중에 하나는 당신의 베란다에서./당신은 알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인다. 당신의 고물자동차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사라졌는데 말이다.

「타인의 의미」(2010, 민음사) 전문



지긋지긋하고, 지루하고, 진절머리 나는 이 지지부진한 삶을 벗어나자! 어쩌다 ‘ㅈ’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에 흉측한 것들이 우글우글한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화자는 대략 이런 심정이다. 그(녀)의 여행은 떠나고 싶은 충동을 근거로 작동한 상상력을 가리킨다. 그렇지 않고야 고속도로 한가운데 고물 자동차를 버려둔 채, 뒤에서 퍼붓는 욕설을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음악처럼 들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그게 진짜라면 뒤따르는 운전자들은 무슨 날벼락이람. 그러니 제발 참으시게!

‘당신’의 베란다를 탈출한 화자를 좀 더 따라가 보자. 그(녀)가 도착한 곳은 바닷가 마을. 메뉴판 외에는 읽을거리가 없는 마을이다. 여기도 따분하긴 마찬가지. 게다가 모텔은 만원이다.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떻게도 안 되는 일이” 상상으로야 술술 풀려나가기 마련. 해서 화자는 데스크에서 한 번 쾅! 터미널에서 또다시 쾅! 식당과 지도가 없는 곳과 당신의 베란다에서도 쾅! 쾅! 쾅!

말 건넴과 독백을 교차하며 상상 속 여행을 리드미컬하게 묘사하는 화자의 화법은 생생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때로 고물 자동차를 버리고 길을 벗어나는 방법이 나쁘지만은 않겠다. “어떻게든 되는 일”이 있을 테니까.

신상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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