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의미」(2010, 민음사) 전문
지긋지긋하고, 지루하고, 진절머리 나는 이 지지부진한 삶을 벗어나자! 어쩌다 ‘ㅈ’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에 흉측한 것들이 우글우글한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화자는 대략 이런 심정이다. 그(녀)의 여행은 떠나고 싶은 충동을 근거로 작동한 상상력을 가리킨다. 그렇지 않고야 고속도로 한가운데 고물 자동차를 버려둔 채, 뒤에서 퍼붓는 욕설을 이해할 수 없는 현대음악처럼 들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에 하나 그게 진짜라면 뒤따르는 운전자들은 무슨 날벼락이람. 그러니 제발 참으시게!
‘당신’의 베란다를 탈출한 화자를 좀 더 따라가 보자. 그(녀)가 도착한 곳은 바닷가 마을. 메뉴판 외에는 읽을거리가 없는 마을이다. 여기도 따분하긴 마찬가지. 게다가 모텔은 만원이다.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으니…….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떻게도 안 되는 일이” 상상으로야 술술 풀려나가기 마련. 해서 화자는 데스크에서 한 번 쾅! 터미널에서 또다시 쾅! 식당과 지도가 없는 곳과 당신의 베란다에서도 쾅! 쾅! 쾅!
말 건넴과 독백을 교차하며 상상 속 여행을 리드미컬하게 묘사하는 화자의 화법은 생생하고 긴장감이 넘친다. 때로 고물 자동차를 버리고 길을 벗어나는 방법이 나쁘지만은 않겠다. “어떻게든 되는 일”이 있을 테니까.
신상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