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립용학도서관 관장
필자가 기억하는 중·고등학교 시절의 공공도서관은 시험공부를 하거나, 소설책을 빌려보는 공간이었다. 중간고사 또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친구들과 공공도서관을 찾으면 미리 온 학생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이 거의 없었던 여건 탓에 학생들이 공공도서관으로 몰렸던 것이다. 브랜드 커피숍이나 스터디 카페를 찾아 시험공부를 하는 요즘 학생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 당시 공공도서관에서 시험공부를 하다가 싫증이 나면 대출실을 찾아 소설책을 빌려 읽거나, 정기간행물실에서 잡지를 봤던 기억이 있다.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책대여점도 찾은 셈이다. 요즘 기준으로 본다면 공공도서관이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며, 이용자도 더 이상의 도서관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공공도서관의 기능은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공공도서관이 지식정보를 소비하기만 하던 장소를 탈피해 유용한 지식정보를 담은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전통적인 도서관은 지식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했다가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그 시절 도서관을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은 소장하고 있는 지식정보의 양이었다. 주로 책자 형태로 생산됐기에 ‘몇십만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이란 표현으로 도서관의 위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오늘날 시민들이 공공도서관을 평가하는 기준은 소장한 책의 수량이 결코 아니다.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지식정보를 담는 매체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확대되면서 지식정보의 양이 급증했으며, 지식정보를 얻는 방식과 접근점이 한층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지식정보를 단위 공공도서관에 모두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다. 이젠 가치 있는 지식정보를 식별해서 접근하는 역량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지식정보에 접근하는 디지털 방식은 ICT의 발달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필요한 지식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기본이고, 영상 기반 SNS인 유튜브에 탑재된 영상 콘텐츠로 지식정보를 얻고 있다. 또한 종이책의 디지털 버전인 전자책을 디지털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으며,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은 논문을 국내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찾아볼 수도 있다. 이용자뿐만 아니라, 공공도서관 입장에서도 지식정보를 소장한다는 개념보다 필요할 때 지식정보에 접근한다는 개념이 걸맞은 시대다.
결국 오늘날 공공도서관에 대한 평가는 지식정보의 전달은 기본이고,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역주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창조적 콘텐츠를 얼마나 기획하고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소장하고 있는 지식정보의 양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콘텐츠의 질이 도서관을 평가하는 기준인 것이다. ‘길 위의 인문학’ 등 도서관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국비 공모사업이 이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오늘날 공공도서관은 지식정보 큐레이션(curation)을 요구받고 있다. 큐레이션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을 뜻한다.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선별된 양질의 정보에 대한 수요가 커지며, 큐레이션은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했다.
용학도서관은 다양한 지식정보 큐레이션을 기획하고, 강연 또는 탐방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큐레이션의 결과물을 편집해 아날로그 콘텐츠인 책과 디지털 콘텐츠인 영상으로 제작하고 있다. 책 발간은 창조적 콘텐츠인 단행본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 진행된다. 지난해에는 국비 공모사업으로 ‘낙중학, 대구를 흐르다- 대구유학의 뿌리를 찾아서’를 비롯해 자체 기획인 ‘동양3국의 혁신 유학’, ‘생태환경아카데미’ 등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관련 전문가를 초빙해 도서관이란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지역의 각종 자원을 유용한 지식정보로 활용할 수 있는 체험 중심의 ‘도서관 밖 도서관’이 있다. 진밭골야영장의 가족생태캠핑을 비롯해 무학산공원과 신천 등지에서 진행되는 생태환경체험과 함께, 수성구의 문화 정체성을 일깨우는 ‘수성선비를 만나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