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차의 추억·1/김경옥

그때의 우리들 슬픔이란 게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죠/그해의 슬픔을 다 합쳐도/싸리나무 가지에서 탄력적으로 흔들렸을 만큼/가볍고 투명한 것이었죠/슬픔이 투명한 만큼/덧없은 형체들은 우리의 시야를 비켜나갔죠/약시弱視의 우리들 뒤로 그해의 재목材木들이 우뚝 우뚝 서서/덧없는 꿈으로 수분을 증발시키고 있었죠.//우리가 아직 어렸던 그 시절/찌거덕거리며 흩어지는 몸체에 힘을 주어/칙칙거리며 증기기관차가 지나간 철로 위/뜨거운 불 뒤의 허무한 잔재들/깔려 있는 물방울을 바라보면서/이 세상 많은 것들이 불의 재목材木을 꿈 꾼 것을 우린 몰랐죠/어쩌면 흐르는 도정에 있었던 그 모든 것들/궁극에 닿기 위해/종착역으로 달리는 증기기관차의 화통 속을 넘보았던 걸까요/차라리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의 허무에 닿기 위해/미지근한 삶을 끓는 화력으로 바꾸고 싶었던 걸까요/종착역을 가진 그때의 낡은 기관차/우리가 닿아야 할 목적지를 모두 불로 바꾸었는지/이제 어디론가 흐르는 도정에 선 우리/어디에 닿아야 할지 알 수 없지요.

「증기기관차의 추억」(1988, 청하) 전문

기차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육상 교통수단이다. 지금은 기차의 동력으로 디젤엔진이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20세기 초만 해도 증기기관이 활용되었다. 사실상 기차라는 용어도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차, 즉 증기기관차를 의미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는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선으로 1899년 9월 18일에 개통되었다. 경인선이 개통된 다음 날 ≪독립신문≫은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고 한다. “화륜거(火輪車) 구르는 소리가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는 듯하고… 수레 속에 앉아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움직이는 듯하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증기기관차의 추억·1’은 전기로 움직이는 오늘날의 고속열차가 아닌, 석탄 등을 태워서 그 태운 열로 보일러를 데우고, 가열된 물이 증기로 기화되어서 수증기의 압력으로 피스톤을 움직여 그 피스톤에 연결된 로드가 바퀴를 돌리는 저 ≪독립신문≫ 속 증기기관차에 청춘을 빗대어 표현한다. 청춘이란 본시 “덧없는 꿈”에 사로잡혀 “약시弱視”의 맹목으로 앞만 보며 달려가는 존재다. 스스로 증기기관차라 믿지만, 세상이라는 증기기관차의 ‘재목材木’일 따름이라고 시인이 노래하는 이유다. 하지만 “뜨거운 불 뒤의 허무한 잔재”를 모르는 열정과 맹목이 있어서 철없을 때의 슬픔은 “싸리나무 가지에서 탄력적으로 흔들렸을 만큼/가볍고 투명”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종착역이 있을 거라 믿고 달려가는 중인지, 아니면 어디에 닿아야 할지 알 수 없어 “차라리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의 허무에 닿”고 만 건 아닌지…. 여러 해 전, 영원한 종착역에 가닿은 시인의 시에 기대어 질문해 본다.

신상조(문학평론가)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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