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제철 자연밥상 받고, 황토방에서 휴식하는 힐링 시스템 ||포도밭 잡초도 느린세상에서





▲ 김갑남 대표가 유기농생강으로 2년 숙성시켜 만든 생강즙을 보여주고 있다.
▲ 김갑남 대표가 유기농생강으로 2년 숙성시켜 만든 생강즙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삶에 쉼표 하나를 찍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찮다. 눈앞에 놓인 수많은 일거리와 빼곡한 스케줄에서의 탈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일상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과중한 일과 스트레스로 번아웃에 빠지기도 한다. 만병의 근원이라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많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은 있다. 명상이나 호흡법으로 심신을 이완시키고 운동으로 풀기도 한다. 쾌적한 자연환경에서 자연이 주는 식재료로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건강한 밥상을 꾸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근에는 치유농업이 하나의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치유농업은 농업과 농촌자원을 활용해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농업활동을 의미한다.

의료적·사회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농업을 활용해 치유하는 힐링농업이다. 2020년에는 치유 농업법(약칭)이 제정됐다. 치유농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의 우울감이 39%나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자연의 시간에 맞춘 느림의 철학으로 한 치유농업을 통해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강소농을 만났다. 상주에서 ‘느린세상 요리공방’과 ‘신의터 농원’을 운영하는 김갑남(63) 대표다. 김 대표는 ‘주방이 치유의 장소가 돼야 한다’는 철학으로 제철요리를 만들고, 유기농 생강즙과 된장, 간장, 쌀누룩 등의 발효 가공품을 만든다. 남편 조용학(64)씨는 유기농 포도를 재배한다.



▲ 김갑남 대표가 손상돈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가로부터 전통 된장과 간장의 관리 방안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 김갑남 대표가 손상돈 경북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가로부터 전통 된장과 간장의 관리 방안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전국 최초의 치유농장

김 대표는 수원에서 생활하다가 1999년 귀향했다. 처음에는 전통장류를 만들었다. 만성 신부전증으로 고생하는 남동생을 돌보면서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았다.

좋은 먹거리로 가족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주변 사람의 건강에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건강한 음식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의외로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았다. 한편으로는 건강한 먹거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적다는 현실도 보였다.



2004년에 건강한 먹거리를 주제로 한 체험과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직접 요리를 하고 요리법도 공유한다.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건강한 먹거리의 중요성도 알린다.

‘이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며칠만 마음 편하게 지내면 병이 다 나을 것 같다’며 ‘치유센터를 건립하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은 것도 계기로 작용했다.

더 많은 사람과 나누자는 생각에서 ‘느린세상 요리공방’을 열었다.

치유농업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결과는 좋았다. 병으로 건강을 해친 후에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2019년에 체험장을 완공하고 전국 최초 치유농장으로 지정을 받았다. 제철에 나오는 식재료를 활용한 계절음식 체험을 하면서 쌀누룩, 누룩요거트, 유기농 생강즙, 된장과 간장 등 다양한 발효식품을 가공한다.



▲ 주방이 치유의 장소가 돼야 한다는 자신의 요리철학이 게시된 주방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있는 김갑남 대표.
▲ 주방이 치유의 장소가 돼야 한다는 자신의 요리철학이 게시된 주방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있는 김갑남 대표.
◆부엌은 치유의 공간

‘주방이 치유의 장소가 돼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철학이다. 건강은 모든 자유 중에서 으뜸이고, 그 건강은 건강한 요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주방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김 대표가 실천하는 요리의 기본은 ‘쉽게, 맛있게, 건강하게’이다. 지역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이용해 간편하게 조리하는 것이 최고의 식단이라고 확신했다.

김 대표는 “모든 요리는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리 과정을 최소화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음식의 맛과 영양은 원재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요리사라도 원재료의 맛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조리 과정에서도 조금 덜 요리하고 조금 적게 넣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김 대표의 주방에서는 기름에 지지고 볶는 것보다 삶고 찌는 것이 많다.

그리고 양념을 최소화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것이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입이 원하는 음식이 아니라 몸이 원하는 음식’을 만든다.

체험장 주변에는 남해의 다랭이논을 연상시키는 계단식 텃밭이 있다. 층층이 이어지는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와 부추, 파, 시금치 등의 다양한 채소는 제철식단의 식재료가 된다. 식재료는 물론 그릇 등의 주방기구와 교육교재도 친환경 제품으로 사용한다.



▲ 김갑남 대표가 쌀누룩 가공체험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 김갑남 대표가 쌀누룩 가공체험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느린 세상 형제들

느림은 농장의 일상이다. 느림보다는 ‘천천히’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가공품들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세상에 얼굴을 내민다. 유기농 생강즙은 2년의 시간이 걸린다. 생강즙을 짜고 유기농 설탕과 혼합해 2년간 저온 숙성을 시킨다. 신이 내린 선물로 불리는 생강은 좋은 효능이 많다. 몸을 따뜻하게 한다. 항산화효과가 뛰어나고 활성산소에 의한 유전자 손상을 막아 항암효과가 높다. 강한 살균효능으로 감기예방에 좋다. 현미와 생강으로 만든 생강식초는 6개월 동안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면역력 향상과 다이어트효과가 있다. 특히 체온 상승에 도움이 돼 암환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김 대표는 쌀고두밥에 황국균을 접종시키고 48시간 배양해 쌀누룩을 만든다. 이 쌀누룩을 이용해 쌀요거트와 누룩소금을 만든다. 쌀요거트는 찹쌀밥에 쌀누룩을 섞어 당화를 시킨 것이다. 감주처럼 끓이지 않아 효모가 그대로 살아있어 장내 유용미생물의 먹이가 되기 때문에 변비예방에 효과가 크다.

일본에서는 마시는 링거액이라고 부른다.

누룩소금은 쌀누룩에 천일염을 녹인 소금물을 넣고 발효시킨 액상소금으로 감칠맛과 함께 음식의 풍미를 더해주는 천연 조미료다. 2년을 묵힌 된장과 간장도 느림의 행렬에서 빠지지 않는다. 전통 메주와 완전 발효된 콩알 메주를 혼합해 장을 담아 조선간장 특유의 향을 없앴다. 불완전 발효로 메주에 증식한 잡균으로 인한 냄새를 콩알 메주가 중화하는 것이다.



▲ 김갑남 대표가 교육생들과 함께 푸른 솔밭을 배경으로 전통 장담그기 체험을 하고 있다.
▲ 김갑남 대표가 교육생들과 함께 푸른 솔밭을 배경으로 전통 장담그기 체험을 하고 있다.
◆교육도 무한리필

체험과 교육은 건강한 음식에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학기에 맞춘 체험과 상시체험, 교육프로그램으로 나뉜다. 학기제 체험은 1박2일 코스로 제철밥상과 계절의 변화를 느껴보는 과정이다.

봄 학기에는 장담그기와 봄나물요리, 새순과 꽃을 활용한 요리체험을 진행한다. 여름학기는 잎채소를 활용한 샐러드 요리와 쌀누룩을 이용해 만든 쌀요거트와 누룩소금 등의 발효음식을 체험하는 것이다.

토마토와 호박 등 열매채소도 활용한다. 가을에는 버섯영양밥과 콩나물밥 체험과 뿌리채소 요리체험, 김장체험을 한다. 상시 체험프로그램에서는 누룩소금과 쌈장 만들기, 계절에 맞는 제철밥상 등을 체험한다.

‘쌀누룩 마스터 클래스’는 요리 교육 프로그램이다.

쌀누룩을 만들고 이를 활용한 요리과정과 함께 느린 세상을 경험하는 힐링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매월 1회 10명의 소수 교육생이 2박3일간 쌀누룩의 모든 것을 배운다. 사후 컨설팅을 진행한다는 것이 이 과정의 특징이다.

김 대표는 “교육장에서 배운 것 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지 않는다”며 “교육은 마쳤지만 환경이 다른 곳에서 혼자서 하다 보면 난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속적인 컨설팅을 진행한다”고 강조했다.

서로 간의 소통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교육생이 서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기도 한다.

무한리필 교육인 셈이다.

체험객들을 위한 미생물 찜질방을 준비하고 있다. 편백나무톱밥에 쌀겨와 미생물을 혼합해 발효 과정에 발생하는 열로 찜질을 하는 것이다. 20분 정도만 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면서 노폐물이나 독소가 배출된다. 건강한 자연밥상과 함께 찜질방에서 땀을 흘리고 황토방에서 휴식을 취하는 힐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 잘 다듬어 놓은 수박무.
▲ 잘 다듬어 놓은 수박무.
◆남편의 친환경 포도밭

상주시 화동면 일대는 명품포도인 팔음산포도로 유명한 곳이다. 해발 280m의 준고랭지로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커 포도 재배의 최적지다. 이런 곳에서 남편은 친환경 포도를 재배한다. 3천300㎡ 규모의 포도밭은 온통 풀밭이다.

제초메트를 깔거나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쑥과 질경이, 냉이, 민들레 등 온갖 풀들이 포도와 함께 자란다. 부부에게는 잡초가 아니라 귀한 보물이다. 모두 귀한 식재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요리체험을 통해 봄나물로 쓰고 효소도 담근다.

체험객들이 쑥떡을 만들어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은행이나 돼지감자, 할미꽃 등으로 만든 천연약제가 농약을 대신한다.

비료 대신에 유박을 뿌리고 로드킬을 당한 동물을 이용해 동물성 아미노산을 만들어 사용한다. 동물 사체에 부엽토와 EM을 혼합해 1년간 숙성을 시키면 액체의 동물성 아미노산이 된다. 이걸 포도밭에 뿌리는 것이다. 이젠 이웃 주민이 동물사체를 발견하면 농장으로 연락을 해온다. 미역과 다시마 등으로 만든 해조류 액비도 사용한다.



▲농장명: 느린세상요리공방(신의터 농원)

▲대 표: 김갑남

▲구입문의: 054-533-9292, 010-8859-7290

▲블로그 : https://blog.naver.com/kgndanji

▲ 소재지: 경북 상주시 화동면 선교1길 34-16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민간전문위원)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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