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식 제이에스 소아청소년과 원장·계명대학교 명예교수

계명한학촌은 대부분의 계명대학교 건물이 담쟁이가 덮인 저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그 사이의 한옥 건물로 매우 아름답게 조성돼 있다. 2015년 4월12일 제7차 세계물포럼이 열리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세계 정상들이 방문해 기념사진을 남긴 명소이기도 하다. 교육공간으로 이용되는 계명서당과 주거공간인 계정헌(溪亭軒), 그리고 정원으로 구성돼 있다. 정원은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 정원 개념에 입각해 각 조경요소의 배치와 형태를 그대로 살려 유생들의 풍류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으로 서운정(瑞雲亭)으로 불린다. 그 서운정 아래의 연못에는 다양한 크기의 비단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며 방문객들을 맞고, 연못에 비치는 그림자에 따라 이리 저리 몰려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위의 산책길은 돌맹이로 위장된 고성능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으로 누구나 그곳에선 철학자가 되고, 음악가가 되고, 종교인이 되기도 한다.

선비교를 사이에 두고 두 연못으로 나눠져 있는데, 작은 연못에는 작은 잉어들이, 큰 연못에서는 커다란 비단 잉어들이 유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는 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 비단잉어 중에는 코이(Koi)라는 신비한 물고기가 있다. 어항에서 키우면 8㎝ 내외, 수족관에서는 15㎝ 정도, 연못에서 키우면 25㎝ 내외, 큰 강에서 자라면 120㎝로 15배나 크게 자라나는 물고기로 환경에 따라 자라는 크기가 다르다니 놀라울 뿐이다. 코이는 성장 억제 호르몬 분비가 가능해서 물의 양, 깊이를 체크한 뒤 거기에 알맞게 자신의 몸 크기를 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이가 자라는 물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듯 사람 또한 주변 환경과 의지에 따라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꿈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게 ‘코이의 법칙(Koi’s Law)’이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미국 프린스턴대 허준이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수상했다. 필즈상(Fields Medal)은 국제수학연맹(IMU)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만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수학계 최고의 상이다. 인터뷰에서 그는 수학을 잘하는 사람에 대한 정의를 “수학을 정말 재미있어 한다. 그리고 모호한 것에 대해서 정확하고 명확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의 말꼬리를 틀 수 있을지 알고, 자기가 모호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두루뭉술하게 시작해서 대화를 거치며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소통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허준이 교수를 보면서 두통이 심해 나를 찾아왔던 초등학교 4학년생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졌다. MRI를 비롯한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없이 두통으로 전원됐던 환아인데, 불안척도가 무척 높아 심리검사를 시행한 결과 지능지수가 143점으로 나타난 아이였다. 지금까지 이런 결과를 본 적이 없어 부모를 내보내고 아이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 기하를 다룰 때에 대부분은 “원의 1/4이 얼마인가?” 이런 문제를 푸는 데, 이 아이의 질문은 “토끼가 달을 세 번 파먹었는데 남은 게 얼마냐?”하는 식의 질문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급기야 선생님도 대답하기가 어려워 부모님에게 하소연했고, 어머니는 다시는 학교에서 질문을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그 때부터 아이의 두통이 시작된 것을 알게 돼 긴장성 두통으로 진단하고 아이를 위로하며 진료한 적이 있었다.

코이가 어항이 아닌 강물에서 120㎝까지 자라듯이, 우리의 아이들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는 큰 그릇을 준비하고 있는지 계명한학촌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비단잉어를 떠 올리며 이 사회를 되돌아보게 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저작권자 © 대구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