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달 작가



▲ 최성달 작가
▲ 최성달 작가


안동이 원래 도자기 가마터로 유명했던 지역이라고 하면 모두들 생소해 한다. 공맹을 숭상하고 한국정신문화수도인 안동에서 무슨 옹기 타령이라며 터부부터하기 일쑤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현재 안동농협이 들어선 자리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사발공장이 있었고, 지금도 5만평 터에 굴뚝이 남아 있는 풍산 삼만벽돌공장은 이 방면에서 아시아 1위 기업이었다.

안동이 사발과 벽돌이라는 거대한 기업이 들어서고 도자기 가마터로 유명한데는 태생적으로 흙과 깊은 관련이 있다. 퇴계와 육사의 땅인 도산 단천의 단은 붉은 단이다.

도자기와 옹기, 벽돌 만드는 붉은 조대흙이 이 지역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낙동강 상류인 단천에서 시작해 왕모산성이 있는 내살미와 육사문학관을 지나 단호-단촌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은 지금도 비가 오면 붉은 흙이 강을 타고 흘러가는 붉은 흙 벨트다.

도산이라는 지명도 이 붉은 흙의 산물이다. 이황이 쓴 도산기에 “산중에 오래전부터 옹기 굽는 가마가 있어 도산”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도산잡영에서도 “순임금이 몸소 질그릇을 구우시니 즐겁고 편안했다”라며 순임금의 도자기 애호를 소개하고 있다. 그 때문일까? 이황은 흙이 불을 온전히 받아들여 질그릇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철학에 이입해 스스로 호를 퇴도, 도수라고 했다. 이는 도야(훌륭한 인물이 되도록 몸과 마음을 닦음)의 관점에서 삶 전체를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붉은 흙의 내력은 안동의 전탑(구운 벽돌)역사와도 정확하게 맥이 닿아 있다. 전탑이 유독 안동에 집중 분포돼 있는 까닭은 다름 아니라 이 붉은 흙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의 전탑과 전탑지가 10곳에 불과한데 그중 국보 16호인 신세동 7층 전탑을 비롯한 4곳과 금계리, 옥산사, 개목사, 임하사의 전탑지 4곳이 모두 안동에 있다는 것은 붉은 흙의 진화와 산업화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다.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 도외시됐던 전탑이 안동에서 유행한 것은 지천으로 널려 있어 구하기 쉬운 붉은 흙이 당시 당의 선진기술 유입으로 산업화됐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안동에는 남후 광음리와 풍산읍 신양리 분청사기 가마터를 비롯해 18개의 가마터가 남아 있는데 상징적 의미로 먼저 붉은 흙의 전설을 품고 있는 도산서원 가마터를 복원할 것을 제안한다. 3대문화권 사업이 완성돼가고 있는 월천서당 인근에 도예가들의 도예마을, 도자기박물관, 도자기 체험학습장, 마을 방을 운영한다면 필시 잃어버린 붉은 흙의 전설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김진욱 기자 wook9090@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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