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오철환

객원논설위원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 물은 열을 받아도 묵묵히 받아들이고 안으로 삭이지만 비등점을 넘어서는 순간 무섭게 끓어오른다. 반응이 늦다고 깨춤을 추다간 된통 당한다. 작금, 민심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LH발 부동산 투기에 대한 분노는 민심의 일단을 보여준 돌출사건이고 서울과 부산시장 등 보궐선거에서 표출된 표심은 빙산의 일각이다. 민심 대폭발이란 미션을 떠안을 악역은 세금 폭탄일 가능성이 크고, 그 도화선은 단연 부동산세금일 확률이 높다.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납부자가 최근 4년간 4.2배 늘어났고, 종부세 납부자 중 1주택자의 비율이 43.6%까지 올라갔다. 세액으로 보면 더욱 심각하다. 2016년 대비 1주택자 종부세액은 무려 9.4배나 늘어났다. 아닌 밤중에 세금 폭탄을 맞았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역대 급이다. 세금이 아니라 벌금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셈이다. 민심이 폭발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심의 결과라 할 밖에 없다.

종부세는 참여정부 때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응해 다주택 소유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부유세이다. 이젠 이를 조자룡 헌 칼 쓰듯 징벌적 수단으로 휘두르고 있다. 무분별한 표퓰리즘으로 뿌린 풍부한 유동성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정부는 고집스럽게 공급 억제 정책으로 일관했다.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든 꼴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1주택자 종부세 부과 대상자가 폭증했다. 설상가상 과표인 공시 가격을 비정상적인 속도로 현실화시켰다. 종부세와 재산세가 급등하는 건 불문가지다.

부동산 보유세가 양극화를 완화시키는 재분배차원의 이념적 징벌적 조세 도구라 하더라도 담세력의 범위 안에서 부과하는 세금일 뿐이고 형벌로 기능해선 안 된다. 부동산 보유가 불법도 아닌데, 부동산 보유에 벌과금을 부과할 수 없고,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감당할 수 없는 세액을 징수할 수 없다. 집 한 채 밖에 없는 은퇴자에게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세와 종부세를 과징하는 것은 복지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횡포다.

모두 다 잘 사는 것이 이상적 가치이긴 하지만 평등만이 유일한 절대가치는 아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수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소중한 가치들을 서로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 헌법도 다양한 기본권을 함께 보장하고 있는 터다. 국가에게 국민을 통제하고 강제할 권한이 주어져 있지만 그 한계도 아울러 가진다. 세금을 징수·집행할 권한을 가지지만 국민대표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조세법률주의는 절대왕권과 싸워 확립한 민주주의의 기둥이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슬로건은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 미국의 독립전쟁을 관통하는 정신을 간명하게 표상한다. 숭고한 목적을 가진 세금이라도 국회에서 입법한 법률에 근거를 둬야 한다. 부동산 공시 가격을 부동산 시가에 연동시키고 이를 과표로 삼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세금을 인상하는 절차는 법의 재량권에 속한다고 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허나 부동산 공시 가격을 현실화한다는 명분으로 과표를 무리하게 인상하는 것은 국회 승인 절차 없는 편법 증세이다. 위헌 소지가 있다.

빚을 내지 않고 집 사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부동산 공시 가격을 그대로 과표로 삼아 세금을 매기는 방법은 적절하지 않다. 부동산 과표에서 빚을 공제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빚은 이자라는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에서 자동 조절된다. 빚이 많다고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상환능력도 없는데 무작정 빌려주지도 않겠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무한정 빚을 내는 사람도 없다. 자기 책임 하에 독자적으로 판단해 형편에 맞게 균형을 유지한다. 국가가 간여할 영역은 제한적이다.

부동산 보유세는 미실현이익에 과세한다는 문제점도 있지만 이미 납부한 세후소득으로 형성된 재산에 다시 세금을 부과하는 이중과세라는 태생적 한계도 지닌다. 소득 없는 은퇴자에 대한 부동산 보유세는 윤리적으로 난감하다. 집을 팔고 이사 가라는 의미라면 주거 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마저 있다. 조세제도로 근사한 형이상학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폼은 나지만 애당초 잘못된 과욕이다. 세금은 그냥 세금일 뿐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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