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염없이 맑겠습니다/ 그대 사는 마을로 바람이 불겠습니다/ 시원한 비 소식은 없고/ 외로이 구름 한 장 떠 있겠습니다// 당신은 너무 높고 나는 낮아서/ 기압골 형성도 어려운가봅니다/ 무너질 듯 파란 하늘이 보일 텐데도/ 터질 듯한 솜구름이 보일 텐데도/ 한랭전선으로 둘러싸인 당신은/ 아직 미동도 없습니다// 그래도 내일은 또 어떨까 싶어/ 편서풍 마음으로 당신을 향해/ 쪽빛 하늘을 보며/ 살아가야 할 듯합니다

「대구문학」 (대구문인협회, 2020. 11)

인생을 살다보면 역전의 순간이 온다. 부부간에도 역전이 있게 마련이다. 통상 젊을 때는 혈기왕성한 남편의 입김이 방어적인 아내보다 조금 센 편이다. 그 원인은 다소 복합적인 것이겠지만 구체적으론 경제력에서 유래할 수도 있고 동물적인 완력에 기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던 사정이 나이가 들어 쉰이 넘어가면 역전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게 된다. 경제력이 내리막길을 걷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때와 대충 맞아떨어진다. 그때쯤 아내의 지위가 배우자에서 사모로 격상되고 사모의 눈치를 보는 일이 늘어난다.

우리는 흔히 사람의 기분이나 정신상태를 일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기분상태는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고, 일기는 매일 매일의 기상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기분을 일기로 표현하는 언어관행을 맹랑한 우스갯소리로만 돌릴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고기압은 날씨가 맑고 기분 좋은 상태이고 저기압은 날씨가 흐리고 기분이 무거운 상태다. 날씨상태와 기분상태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서로 통하는 관계라 할 만하다.

하늘이 높고 맑은 날은 기분이 좋은 때다. 그럴 때 할 말도 하고 볼일도 보는 게 신상에 좋다. 맛난 요리도 해달라고 조르고 용돈도 얻어낸다. 자신의 기상상태에 관계없이 헤게모니를 쥔 힘센 상대편의 기상상태에 맞춰주는 것이 살아가는 요령이고 그게 이득이다. 비구름이 낮게 깔리거나 비가 오는 상황에선 근신하고 조심할 일이다. 고기압으로 고양된 자신의 기분에 도취돼 상대편의 저기압 상태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오도 방정을 떨며 웃다간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고 개망신 당하는 수가 있다.

단순한 저기압 상태보다 더 무서운 건 차가운 한랭전선이 형성돼 있을 때이다. 한랭전선이 머무는 경우 극도로 근신하고 인내하면서 물러갈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 최선의 방책이다. 눈치 없이 속살을 드러내고 방심하는 날엔 감기몸살을 만나기 십상일 것이다. 비록 고기압 상태라 하더라도 한랭전선이 버티고 있는 한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한랭전선을 바꿔보겠다는 무모한 시도보단 때를 기다리는 지혜가 더 바람직하다. 이는 저기압 상태에서도 당연히 적용된다.

저기압이 낮게 깔리는 가운데 한랭전선이 자리하는 악천후도 더러 만난다. 그런 악천후도 언젠가 물러가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암울해 보여도 무던히 기다리다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게 마련이다. 춥고 어두운 날에도 따뜻한 아랫목은 있다. 일편단심으로 살아가는 마음이 때론 기상도를 바꾸기도 한다. 일체유심조는 오직 믿는 자의 몫이다. 마음만 돈독하게 먹는다면 극복하지 못할 상황은 없다. 교만하지 않고 성내지 않아야 한다. 믿고 오래 참으며 견뎌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연민의 정이 비로소 둥지를 트는 법이다.

오철환(문인)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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