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애

시인

봄이 오면서 시골 마을에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밭갈이를 하러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투기 광풍이 시골마을까지 닿아 마을 땅의 반 정도는 소위 말하는 외지인들이 주인이다. 낯선 그들은 마을로는 들어오지 않고 들판 여기저기에 작은 쉼터를 지어 드나든다. 시골 사람들의 텃세가 심하니 도시인들이 시골의 마을 안으로는 들어가지 말라는 소문 때문인 듯 그들은 주로 마을 밖으로 오간다.

나도 도시에 살지만 고향을 시골에 둔 덕분에 언제 돌아와도 원주민 대우를 받는다. 부모님 세대의 몇 남지 않은 어르신이나 그 자식 세대에게 나는 한마을 사람이다. 그러니 내가 시골로 온 날은 산책을 해도 마을을 한 바퀴 돌거나 누가 주인인지 아는 밭 주변을 돈다. 어느 밭에 어떤 나무가 심어져 있는지, 어떤 곡식을 재배하는지 보지 않아도 안다.

얼마 전에 마을 전체를 새로 측량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우리 집 땅이 마을 길 넓히는데 들어간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많이 들어갔다는 걸 이번에 새로 알았다. 물론 보상 따위는 없었는데 이번에 측량을 하면서 보상을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보상보다는 땅을 돌려 줬으면 좋겠지만 우리가 그 땅을 돌려 달라면 농기계가 다닐 길은 아마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두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냥 우리 땅이 거기 있거니 하는 거다.

그런데 측량을 새로 하면서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모두 사라졌다. 길이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사유지더라는 것이다. 그 사유지의 주인은 길이 사라지건 말건 그 길에다 울타리를 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산에 작은 텃밭이 있는 사람들은 드나들 길이 사라졌기 때문에 밭을 경작할 도리가 없다. 물론 사유지이니 그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것에 대해서 누구도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랫동안, 수 백년은 족히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까지가 내 땅이오, 하겠지만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을 막지는 않는다. 농사를 조금 덜 지어먹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살면서도 그들은 아무 불편이 없었고,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아가려면 내가 조금 손해를 봐야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도시 사람들이 이 시골의 땅 주인이 되면서 그들은 제일 먼저 울타리부터 쳤다. 울타리가 쳐진 땅은 마을에 속한 땅이긴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마을에 속한 땅은 아니다. 그 땅은 마을로부터 고립됐고, 마을 사람 누구도 울타리가 쳐진 땅을 넘겨다 보지는 않는다. 과일 수확을 하고는 한 바구니 가득 과일을 담아 새로 이사 온 집 입구에 놔두는 일도 하지 않는다. 울타리가 쳐지고 문이 굳게 잠긴 땅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다.

오래전에 젊은 화가 가족이 마을 옆에 집을 짓고 이사를 왔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 온 땅에다 집을 지었던 그 가족은 울타리를 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매사에 방심하는 듯한 그 건물이 금방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그 집 근처에 과수원이 있었던 엄마는 과일을 수확하면 그 집의 아이들이 먹으라고 과일 바구니는 현관에 두고 오곤 했다. 물론 과일이 그리 좋은 것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B품이었지만 그 화가는 늘 고마워했다. 좋은 과일은 팔아야 하고 농사를 짓는 농부들조차 좋은 과일을 잘 먹지 않을 때였다. 아이들이 얼마나 먹고 싶어 하겠냐고, 과일을 수확할 때마다 먹을 만한 것들을 골라 그 현관에 두고 오곤 했다. 그렇게 그들은 마을 사람이 돼 갔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고, 어떤 아이는 직장에 다니고 어떤 아이는 대학교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학교를 다니느라 우리 집 앞을 오가던 그 작은 아이들이 생각난다.

울타리를 친다는 것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이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그들은 그 생활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골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그 울타리는 늘 생경하다. 뭐하러 그 논밭에 돈을 들여서 울타리를 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넓은 자연을 더 넓게 가지는 방법은 스스로의 공간적인 한계를 두지 않는 것이다. 도시에는 도시적인 삶의 방법이 있고 시골에는 시골적인 삶의 방법이 있다. 몸은 옮겨가도 삶의 방법이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도시에 사는 것이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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