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르는 개구리와 사라지는 24절기

발행일 2021-02-25 13:36:2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박광석 기상청장
박광석

기상청장

다음달 5일은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다. 하지만 이미 1월 말부터 개구리가 나타났다는 제보와 기사가 있었으며, 2월 초에는 개구리 알이 발견되기도 했다. 매우 빠른 봄의 징후다. 개구리는 유난히 외부 온도에 민감해 날씨가 따뜻해지면 다른 생물에 비해 더욱 빨리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때문에 개구리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경칩은 봄을 나타내는 대표 절기로 여겨져 왔다.

온도계가 없던 시절에는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동·식물과 이슬, 눈과 같은 기상의 변화로 계절을 추측할 수 있었기에, 우리 조상들은 24절기를 사용해 계절을 구분했다.

이러한 절기는 농경사회에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농업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우수(雨水)는 2월 중순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강수가 눈이 아닌 비로 내리기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망종(亡種)은 6월 초순으로 벼와 같은 곡식의 씨앗을 뿌리는 시기, 상강(霜降)은 10월 말로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니 서둘러 추수해야 하는 시기이다.

1차 산업의 비율이 줄어든 오늘날, 절기의 의미와 가치가 사라지고 있지만, 오히려 주변 환경을 세심히 들여다보기 힘든 요즘에 계절의 지표로써 활용됐으면 한다. 입춘(立春, 2월 말), 대서(大暑, 7월 말), 한로(寒露, 10월 초), 대설(大雪, 12월 초) 등 이름 만으로도 그 계절의 포근하거나 후끈한,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이전에 경험해 본 그 계절의 감각이 떠오르곤 한다. 또 동지에 팥죽을 먹는 것처럼 시기마다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입춘에 입춘첩을 문 앞에 붙이는 등의 세시풍속들이 있어 절기를 잘 활용하면 그 계절을 온전히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우리 삶과 문화를 만들어온 절기도 기후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지난 1월13일 이후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으로 따뜻한 날이 많았고, 22~23일 양일간 대구·경북의 평균 기온은 7.5℃로 3월 중순에 나타나는 기온을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겨울잠을 자고 있던 개구리는 변하는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해 대처한 것인지도 모른다. 봄이 온 것을 빨리 감지하고 활동할수록 번식 성공률이 높아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올 1월은 한마디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기온 널뛰기’를 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온의 변동폭이 컸다. 1월 초에는 매서운 한파가 발생해 대구·경북의 일 평균 기온이 –11℃까지 내려갔었고, 이후 평년보다 높은 기온과 낮은 기온이 번갈아 나타나며 일평균 기온의 변동폭이 최대 18.5℃까지 나타나 1973년 이후 가장 큰 변동폭을 보였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제6차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기상청의 2100년까지의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에 따르면, 현재 수준의 탄소배출량을 지속하는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폭염에 해당하는 온난일이 4배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대로 향후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저탄소 시나리오’로는 온난일이 2배 증가하는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인류의 노력에 따라 24절기가 살아있는 다채로운 계절을 계속 맞이할 수 있을지, 혹은 단조로운 극한기상을 더 자주 만나게 될지가 달라질 수 있다.

급격한 변화는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적응하기에 혹독한 환경이었으리라. 더불어 철모르는 개구리처럼 우리의 삶에도 계절 없이 단조로운 극한 여름과 극한 겨울만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깨닫고 실천과 노력에 박차를 가할 때다. 철모르고 잠에서 깬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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