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은

리즈성형외과 원장

환자들과 함께 하다 보면 삶의 모습들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수술 후에도 여러 해 동안 좋은 일, 나쁜 일을 함께 겪으며 이것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여러 수술을 받으면서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여자 환자가 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 좋은 유대 관계를 가지게 됐고, 그래서 좀 더 복잡한 수술도 하게 됐다. 그런데 이 수술에 문제가 생겨 불행하게도 한 쪽 얼굴 신경 손상이 생겼다. 정말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 환자는 ‘여태껏 좋은 인연으로 잘 지내 왔는데, 살다 보면 나쁜 일이 어찌 없겠느냐’ 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줬다.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더 미안한 마음에 백방으로 치료 방법을 수소문해 몇 달 동안 치료를 계속했고 함께 경과를 지켜봤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경과는 좋아졌고, 이제는 서로 웃는 낯으로 볼 수 있게 됐지만,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치료하는 과정에 매일 아침마다 산에 올라 땀을 흘리면서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을 이겨내기 위해 용기도 내보고 마음도 다스렸다는 이야기에 참 많이 부끄러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 이르는 동안, 환자와의 관계가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처음 의사와 환자로 만났을 때부터 진심으로 상대방에 다가가고 성의 있는 태도로 신뢰를 쌓으면서 소통해 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환자는 문제가 생기더라도 가장 성실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대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다른 한 사람!

다른 병원에서 수 년 전 쌍꺼풀 수술을 하고 우리 병원에 찾아왔다. 수술 후에 쌍꺼풀을 만든 조직과 피부 사이에 흉터 조직이 생겨 서로 붙어버린 환자다. 쌍꺼풀은 풀려버렸고 눈썹으로 눈을 뜨는 모양의 눈이 돼 있었다. 여기에다 볼살마저 처져 팔자주름이 깊이 패여 있는 것도 함께 해결해 달라는 이야기다.

우선 쌍꺼풀 재수술을 진행하면서 붙어버린 조직을 힘들게 분리하고 쌍꺼풀 라인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피부도 함께 늘어져 있어 이것까지 제거하려 하니 눈이 감기지 않는다. 그래서 나중에 피부가 늘어지면 다시 제거하기로 하고 쌍꺼풀 수술을 마쳤다. 볼살 처짐 수술도 함께 마쳤다.

그렇게 수술을 마치고 나니 환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수술 전 청약서를 작성하면서 모든 발생 가능한 문제점, 부작용 등과 함께 수술 후 치유과정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고 수술 했음에도 아랑곳 않고 온갖 불평불만을 늘어놨다. 수술 다음날부터 1개월 동안 10번도 넘게 병원에서 언쟁을 하게 됐다. 수술 후 나아가는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하루 종일 마스크에 안경을 쓰고 지낸다고 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중립적인 태도로 환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수술 전에 설명했던 대로 하나씩 다시 설명하면서 시간이 지나갔다. 그렇게 몇 달 지난 후 환자의 상태는 사전에 설명한 것처럼 점차 좋아지면서 태도가 누그러졌다.

상담하고, 수술하고 치료하는 과정을 겪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나의 지식과 기술로 수술하고 그에 따른 수익을 올리는 단순한 관계가 아니고, 서로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인생을 함께 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많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배려하는 따뜻하고 진정성 있는 말 한 마디다. 이것은 의사와 환자만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인간관계를 이끌어 가는 기본적이고 중요한 소통의 요소이다.

어떤 이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진정한 소통을 하면서 상황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반면, 또 어떤 이는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 한마디로 상황을 악화 시키고 도리어 자신에게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사소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 해 보고, 행동이 불러올 결과를 사려 깊게 예측해 본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 날 불행한 일들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역지사지’ 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함께 살아가는 현대인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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