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낯선 문제

발행일 2021-02-17 10:56:2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데자뷰(deja vu). 불어로 ‘이미 보았다’는 의미를 가지는 말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이지만 이미 봤거나 경험한 적이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을 말하는데 우리말로는 기시감(旣視感)이라고도 한단다. 데자뷰의 발생 원인은 뇌가 저장된 기억의 자취를 더듬는 과정에서 기억의 착각이나 신경 세포의 혼란으로 정보 전달이 잘못되면 일어난다고 각종 사전에는 기술돼 있다.

개인적으로는 데자뷰의 발생 원인에 대한 것은 잘 모르겠고 일상 생활 중에 가끔씩이지만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일들을 경험할 때가 있긴 하다. 이는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난데 없이 ‘뭔, 데자뷰?’라는 궁금증이 들겠지만, 요즘 국내 경기 여건을 잘 살펴보면 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 들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 온 경제사회적 위기에서 탈출을 앞두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과거 V자 위기 극복 과정을 한 번 살펴보자.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위기는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 경제성장률이 1998년 -5.1%까지 급락한 후 이듬해 11.5%의 급등세를 보였다. 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경제성장률이 2009년 0.8%를 기록한 후 다음 해인 2010년에는 6.8%로 놀라운 반전을 이뤘다.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었던 지난 해와 올 해를 비교해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1.0%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올 해에는 3%대로 복귀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물론, 수치만 놓고 보면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없을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경제 규모가 과거의 위기 당시에 비해 많이 커졌다는 점만 고려해봐도 V자 회복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로 딱히 부정할 만한 이유를 찾기 힘들다. 따라서 올해 우리 경제의 실적이 마무리되는 내년 1월에는 모두가 과거 위기 극복 과정에서 우리 경제가 보여줬던 저력을 마치 데자뷰처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문제는 수 차례의 위기 극복 과정에서 겪었던 이미 익숙해진 경험들이 이번에도 비교적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 그리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번 위기까지 우리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을 살펴보면 각각 5%대 중반, 2%대 후반을 기록해 잠재성장률과의 괴리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즉, 과거 위기는 비교적 단기간에 종료됐고,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력도 빠르게 회복돼 중기 수렴 과정을 거쳤는데 과연 이번에도 이런 과정이 반복될 것인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서는 백신 보급이 원활히 이뤄져야 하고,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사회적 면역 형성에는 항간에 떠돌듯이 7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우려다. 이런 우울한 예측이 현실화되면 지금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낯선 경험을 하고 있는 우리 경제가 위기 극복 후 수년에 걸쳐 잠재성장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매우 새로울뿐더러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지속해야 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과도할 정도로 비관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대응과 경제적 위기 극복 성과만큼은 스스로 자부해도 좋을 정도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이러한 성과가 시간이 지날수록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커지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내수부문의 회복은 다소 미흡해 보이지만, 외수부문에서만큼은 큰 저력을 발휘하고 있어서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출지향형 성장모델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는 점도 큰 위안이 되는 점이다. 정책적으로도 비록 낯설기는 하지만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대응이 이뤄지고 있어서 더더욱 우리 경제의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 온 익숙하지만 낯선 문제들에 대해 마땅히 우려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미래를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터무니 없는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굳이 염세적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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